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Nov 14. 2024

글묵의 형벌

0886

만약 글쓰기가 말하기처럼 한시도 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은 본능이었다면 어땠을까


강요된 침묵이 하나의 징벌이 되듯이 '글묵*'을 강요하는 것이 인간의 큰 고통이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은유와 상징들을 글로 쓰지 못하게 해서 글쓰기의 기쁨을 뺏는 형벌은 치명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이토록 글쓰기의 자유를 허용한 시대가 얼마나 있었으며 내가 쓴 글의 발행이 실시간으로 폭넓게 전달되는 것 또한 유사 이래 얼마나 있었을까


그래도 글쓰기는 말하기의 행위보다 뒷전이다


대상을 앞에 두고 쓰지 않으므로 상상해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글은 책으로 묶어낼 재료로 길이 남는다는 책임이 자꾸 주저하게 하는가


휘발되는 말이 오히려 사용하기에 홀가분해서일까


말을 아끼듯이 글을 아끼는 것이 미덕은 아닐 텐데 쓰면 쓸수록 말처럼 늘지 않고 허우적거려서 부끄럽다


자유롭게 놓인 글쓰기에서 글묵의 형벌을 스스로 내린 것 같다


시를 쓰지도 못하고 에세이를 쓰지도 못하고 소설을 쓰지도 못하고 일기를 쓰지도 못하고 마음을 쓰지도 못하고 기억을 쓰지도 못하고 너에게로 가는 길을 아니 기를 쓰지도 못하고

마냥 끄적이고 있다


말하고 있다고 모두 말이 아니고
쓰고 있다고 모두 글이 아닐테니


이 꼴이 형벌이 아니고 무엇이랴



*글묵: 글쓰기의 욕망을 누르고 성근 말하기에만 의존하는 상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