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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Nov 15. 2024

기린의 불면

0887

기린이 걱정이다


잠을 안 잔다


초식동물이라서 그런가


너무 키가 커서 눕기가 어려워서 그런가


목만 2미터나 되는 녀석이 잠 못 드는 이유는 2미터나 되는 베개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아카시아 나뭇잎만 30킬로그램이나 먹고 나면 식곤증이 들만도 한데 

하기사 그 많은 양을 먹으려면 잠잘 시간을 쪼개가며 먹어야 다 먹을 수 있을게다


자장 자장 기린아


눈이라도 붙여야 먹이 찾아 물을 찾아 사바나를 누빌게 아니니?


기린아! 너의 우아한 걸음걸이는 혹시 불면에서 오는 흐느적거림은 아니냐


졸리면서 끝끝내 쪽잠으로 숙면이라고 우기는 니가 경이롭다


20분만 주면 푹 자고 일어날게요


기린아! 내가 팔베개해줄 테니 여기 잠깐 누워봐


아니 아니 다리를 올리지 말고 목으로 베는 거야


혀는 또 왜 이리 검푸르 딩딩하니


입에서 풀잎 냄새가 향긋하구나


한숨 자고 나서 초원을 달려보자 넌 심장이 튼튼하니까 


발길질할 때에 그렇게 무섭더니만 눈을 보니까 소처럼 순해 보이네


뿔에 털이 있는 걸 이제야 알았네 사자털처럼 무성하구나

아차차 너의 천적을 언급해서 미안


너 아까 휘파람도 불던데 개인기니?

아 그랬구나 아까 멀대 같은 녀석이 기침소리 같은 거 한 게 구애였다고?

니들도 대화를 하는구나 하도 말이 없길래 언어가 없는 줄 알았는데


암튼 니들이 부럽다


불면인 줄 모르고 불면하니 불면이 고통은 아니겠다


우리는 자야 한다는 강박이 스트레스가 되어 잠 못 들게 하기도 하거든


그것도 그렇고 너는 천적이 사자, 치타, 표범, 하이에나, 들개, 악어 정도지만 인간은 나 아닌 인간들이 모두 천적이라서 경계를 늦추고 편히 잠들 수 없어서 인가 봐


기린아! 팔 좀 뺄게 팔에 쥐가 나서 그래


아까 가까이서 보니까 하마 그 애 땀이 벌겋더라 그건 왜 그런거야 


내 말 듣고는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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