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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백번 구타

0900

by 이숲오 eSOOPo
글쓰기는 구타의 기록


글을 쓰는 것은 때리고 맞는 일이다


세월에게 함부로 맞은 것을 세상으로부터 함부로 맞은 것을 활자로 겸허히 종이에 때리는 행위이다


그 푸닥거리를 900번이나 하고 나니 맷집이 생긴다 많이 맞았다고 맞는 게 덜 무서워지는 건 아니다 그저 눈을 뜨고 그 순간을 바라볼 수 있다


글쓰기의 본질은 삶의 후면을 놓치지 않는 것에 있다 2개의 레일에서 하나의 레일을 소홀하지 않게 살피고 다루는 데 초점을 둔다 죽음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삶을 지속하는 지혜를 가르친다


보이는 것은 늘 허상에 가까워서 글을 쓰면서 보이지 않는 진실을 만난다 매번 어긋나나 운 좋게도 마주치는 날에는 세상을 다 가진 포만감으로 발행하기도 했지만 보일 듯 말듯한 이미지만 손에서 미끌거릴 땐 부끄럽게 발행했다

앞으로 얼마나 보이지 않는 세상의 주먹에 얻어터지고 멱살을 잡히고 벼랑 끝에 내몰릴지는 모르겠지만 글쓰기는 그 처절하고 숭고한 구타의 감각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기릴 것이다 그것은 피고름이 피워내는 꽃이고 멍이 만들어낸 열매다


이제는 그럴 수 있으리라 채워야 할 것을 못내 미치지 못하게 닿더라도 비워야 할 것을 차마 서두르지 못해 머뭇거리더라도 더 이상 글쓰기를 조급해하지도 불안해하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흘러가는 모습 그대로를 탐탁해하고 익숙해지는 시점마다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하는 귀여운 마조히스트가 되는 것이 굳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다음 계절에는 천 번째 글을 만날 텐데 어떤 내가 되어서 무엇의 껍질을 벗어서 날아오를까 무엇으로


구타의 상처마다 입을 맞추고 또 다른 씨를 뿌린다


모든 기념은 이토록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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