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과 유머

0901

놀이하듯이 쓴 글들이 유혹적이다

놀이는 계획하지 않고 즉흥적이다

어디서 시작했는지도 모르니까 끝의 지점도 모른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은 유머와도 비슷해서 뜻밖의 유머러스함에 무장해제되어 유혹당하기도 한다

유머는 워드플레이
유혹은 위드플레이

때로는 유혹이 유머가 되기도 하는데 밀착하거나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 그러하다 유혹이 순수하게 작동되는 범위는 유머의 작용반경과 꽤 흡사하다

유혹의 반대편에 유머가 있어서 유혹직전에는 미소가 잦지만 유혹에 포획되면 웃음기가 사라진다

언어 반신욕

유머의 밑바닥에 유혹이 있어서 유머직후에는 웃음이 잦지만 유머에 천착하면 미소가 사라진다

유머와 유혹 모두 상대방의 표정을 장악한다

표정은 마음보다 사악하고 변덕스러워서 위험하다

위험물을 다루는 자는 취급자격증이 필요해서 유머하는 자와 유혹하는 자는 훈련이 지독하다

세상을 온통 유머로 환원하려면 눈물이 절대적이다

슬픔을 깊이 고뇌한 자만이 한 줌의 유머를 낚는다

세상을 죄다 유혹하려면 고독의 시간이 필수적이다

고뇌를 넓게 파헤친 자만이 한올의 유혹을 낳는다

유머도 유혹도 함량이 미달일 때 서로 언약이라도 한듯 부끄러워진다 이는 수치와 죄악 사이에 머물러서다

잘 유머하기 위해서는 유혹의 언어가 절실하고

잘 유혹하기 위해서는 유머의 언어가 필요하다

잘 쓴 글은 유머러스하다

웃겨서가 아니라 내 표정을 지배하고 유혹해서다

깊은 유머는 얼굴의 표정을 뛰어넘어 마음의 표정까지 조종한다 이만한 유혹은 치명적이다

좋은 글쓰기는 결국 유머와 유혹의 탈을 쓰고 있다

월간 북토크 X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