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확한 희망

0902

by 이숲오 eSOOPo

이른 아침 명동으로 가는 버스 안이 붐비고 비좁다


손잡이를 가까스로 잡고 서있는 노인이 위태롭다


승객들은 전화기로 어디론가 급하게 타전하고 있다


버스가 세월에 표류 중이니 구조바람!


벨을 누르자 차는 멈추고 세 개의 불안이 올라탄다


예상치 못한 왼쪽 깜빡이를 켜고 커브를 돌고 있다


승객은 일제히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꺄아아아


가끔씩 운전기사는 겨우 승차요금만 받고 놀이기구 같은 비싼 서비스를 해 준다 단골이 이래서 최고다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버스는 만원으로 탱탱하다



아들 같은 사내가 옆에 앉은 아빠 같은 사내에게 강낭콩 같은 무선 이어폰을 조용히 귀에 꽂아준다


무서울 때는 소리를 지우세요


시계탑을 구경하느라 옆자리에 소년에서 소녀로 바뀐 줄 몰랐다 연신 안경을 만지며 코를 훌쩍인다


버스 안내는 녹음된 목소리이고 다음정류장만 보여준다 지나간 정류장에는 미련이 없다 쿨하다


옷이 두꺼워지니 움직임도 둔해서 서로의 갈 길을 막는다 옷이 스칠 때마다 불꽃이 인다 장관이다


여자승객은 24명이고 남자승객은 산만해서 세다가 자꾸 놓친다 기사는 흰옷을 입고 있고 침묵중이다


할말이 너무 많은 표정으로 묵언수행중인 것 같다


아까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커플이 맞짱을 뜰 기세다


너는 꼭 말할 때 폰을 보더라 폰이랑 살던가


너무 유치해서 이 버스가 유치원통학버스인가 했다


버스가 도심에 깊어질수록 차량도 많아지고 있다

물이 깊어질수록 물고기가 많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고래같은 덩치로 도로를 유영한다 먹고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동으로 가는 버스 안에는 희망이 정확하게 보인다 이것은 결코 놓칠 수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