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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은 것과 침묵하지 못하는 것 사이에 있는 것

챌린지 7호

by 이숲오 eSOOPo

목포항


김 선 우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짓무르고 다친 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속의 상처 덧날 때가 있다


먼 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손가락을 더듬어 심장을 찾는다

가끔씩 검불처럼 떨어지는 살비늘

고동소리 들렸던가 사랑했던가

가슴팍에 수십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하고

휘적휘적 가고 또 오는 목포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떠나간 막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영화 <사일런트 러브>를 보고 나오면서 그와 논쟁을 벌였다


그는 *보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에 시가 있다고 했고

나는 보지 않은 것과 말하지 못하는 것 사이에 시가 있다고 했다


그는 말하는 것과 침묵하는 것 사이에 시가 있다고 했고

나는 말하지 않은 것과 침묵하지 못하는 것 사이에 시가 있다고 했다


그는 침묵하는 것과 꿈꾸는 것 사이에 시가 있다고 했고

나는 침묵하지 않은 것과 꿈꾸지 못하는 것 사이에 시가 있다고 했다


옥타비오 파스는 꿈꾸는 것과 잊는 것 사이에 시가 있다고 말했고

나는 꿈꿀 수 없는 것과 잊어야 하나 끝내 잊지 못하는 것 사이에 시가 있다고 대들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인정을 저어했다




*옥타비오 파스 <내가 보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 부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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