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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an 28. 2019

책놀이 공간 따띠 #05

공사과정 2


목공팀이 빠지고, 도장팀이 들어왔다. 면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벽과 천정의 바탕이 되는 각종 보드의 이음매들을 이어주는 퍼티작업이 선행되고, 내구성을 위해 3회 정도 페인트를 반복해 도장한다. 아이들이 쓰는 공간이라 친환경 페인트를 고집하고, 아이들의 손을 타는 하단부는 낙서방지 페인트를 한번 더 칠해주었다.  


작업자 분들은 써커스의 키다리 아저씨처럼 특수 제작된 철제 의족을 신고 천정 작업도 쓱쓱 해버리신다. 추위도 쫒고, 페인트도 빨리 마를 수 있도록 대형 난로가 여러 대 동원되었다. 





페인트 작업까지 끝나고 나니 서서히 의도했던 공간이 보인다. 건축가들이 공사 과정에서 가장 좋아하는 지점은 골조 공사만 끝났을 때이다. 소위 뼈대만 있을 때가 가장 순수한 공간만이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경우 기존에 구조체가 있는 상황에서 출발했으니, 지금이 그와 유사한 시점이라 할 수 있을 테다. 


예산의 한계로 손을 대지 못한 외관이 아쉬웠는데, 복지재단 측에서 자체 예산을 약간 마련하여 최소한의 외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밝은 톤의 고벽돌을 선택하고, 기존의 출입구는 건물의 역사처럼 흔적을 남기기 위해 어두운 색의 고벽돌을 약간 셋백(set back)시켜 쌓기로 했다. 벽돌은 기본적으로 따뜻한 질감을 가지고,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닳아가는 재료 중 하나라 선호하는 재료 중 하나이다. 




서울에서 별도로 주문 제작한 주방가구와 일반가구들이 들어왔다.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퀄리티의 보장이 되지 않아 운송비용을 감수하고 서울에서 제작해 왔다. 테이블은 심플하게 철제 프레임에 목재 상판을 올리는 방식으로 디자인하고, 의자는 기성품을 신경써서 골랐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높은 퀄리티를 내려면 선택과 집중, 폭넓은 검토와 발품, 그리고 안목이 필요하다. 




협동조합 목공방에서 별도로 제작한 원목 책장까지 들어오니 어느정도 구색이 갖추어졌다. 전문 목공방에서 원목 책장을 제작하기에는 단가가 너무 높아 섬세함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합리적인 가격에서 제작이 가능한 협동조합 공방을 선택했다. 목재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옹이가 있는 미송을 선택했지만, 스테인을 바르지 않은 원목에서 나는 나무내음이 좋다. 



가구까지 들어온 날 아이들이 현장에 처음으로 놀러왔다. 그 동안 아이들은 애써 공사현장을 보지 않으려 했다. 보육 선생님께서 전해주신 이야기인데, 한번은 아이들이 속상하다고 아우성이었단다. 완성이 되면 '짠!' 하고 변신한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가림막의 일부분이 찢어져 안이 들여다보여 속상하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아이들이 얼마나 이 공간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되어 기뻤다.


책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공간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며 신이 났다. 공간을 휘젓도 다니며 자연스레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나도 모르게 웃음 짓는다. 




이 프로젝트에는 개인적인 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갔다. 제한된 예산으로 가능한 많은 것을 만들어 주려다보니, 가구 등의 별도로 떼어낼 수 있는 아이템들은 수의계약을 해 개별적으로 컨트롤을 해 주었다. 입찰을 위한 내역에는 원가 계산을 통해 관리비니 보험료니 하는 것이 붙어 원가의 30%이상 상승하기 때문에, 별도의 아이템으로 뺄 수 있는 것은 떼어내 직발주를 한 것이다. 설계자가 감리를 같이 하기에 가능한 방법이고, 건축가의 의지와 노력이 있을 때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세부 디테일과 소품 하나까지도 정성을 들이는 것은 계약서와 용역비에는 쓰여지지 않은 사항이다. 나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였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일이다. 누구도 요구하지 않은 애씀은, 이곳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금전적 이익과는 다른 가치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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