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니 Jan 29. 2019

초원 같은 후배에게

건축과 한 해 후배 중에 지원이라는 친구가 있다. 차분한 성격에 말투가 조금 느린 이 친구는 대학 생활 전체를 통틀어 나의 유일한 시다였다. 홍대 건축과에는 입학하자마자 1학년과 4학년을 매칭 시켜주는 시다-마스터 전통이 있었다. 1학년이 4학년 졸업작품을 도와주며, 건축이라는 것의 맛도 보고 학교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라는 의미였다. 나의 마스터는 지금까지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 몇 안 되는 선배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와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지원이는 어쩌다 보니 내 시다가 되었다. 사실 학년별 설계과제를 할 때에도 시다를 쓰는 친구들이 꽤 많고, 졸업작품은 다들 욕심내어하는 것이기에 많게는 열 명까지 동원하는 경우도 있었다(대신 엄청난 식비와 간식비는 감수해야 한다 :). 반면 나는 내 일은 내가 하자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는데, 유일하게 시다를 쓴 것이 졸업 작품의 모델 시다였다. 많은 후배들 중에 차분한 성격의 지원이가 마음이 편해 모델의 일부를 만드는 도움을 받았다. 지원이는 꼼꼼하게 작업을 하는 대신 특유의 말투처럼 손이 조금 느린 편이었다.


덕분에 나는 졸업을 무사히 했고, 이후 지원이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에는 홍대 건축과의 커트라인이 상당히 높이 편이라 서울대가 안 되면 이쪽을 선택하였는데, 지원 역시 매우 뛰어난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설계를 직업으로 택하는 것에 대에 대해 부담감이 있었나 보았다. 그러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들은 소식은 축협에 근무하시던 아버지가 평소 꿈꾸어왔던 목장을 하기 위해 온 가족이 안성으로 내려갔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원은 아버지의 목장일을 도우며 공부를 한다고 했다. 24시간으로 돌아가는 목장일을 하며 공부하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결국 수험생활을 접고, 집 근처의 연구소에 취직을 해 연구소 일과 목장일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지원이의 하루 일과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소들을 돌보고, 9시에 연구소로 출근해 실험을 하고 5시에 퇴근해 다시 10시까지 목장일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언젠가 한번 안성으로 내려갔을 때, 지원이는 트럭을 몰고 버스터미널로 마중을 나왔다. 집에서 밥 한 끼를 맛있게 얻어먹고, 텃밭에서 키운 농작물을 잔뜩 선물로 받아 들고 서울로 돌아오는 내 마음이 푸르렀다.




새해를 맞아 얼굴을 보기로 한 지원이는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소들을 먹이고, 내게 줄 것들을 잔뜩 싸들고 올라왔다. 집으로 초대하기는 준비가 안되어 있어 밖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헤어질 무렵 지원이가 저녁에 먹으라며 들려준 종이 가방엔 샐러드며, 연어며, 잡곡빵이며, 치즈며, 커피까지 풀 세트가 들어있었다. 맙소사. 집이 엉망이라도 집 안으로 초대했어야 했다.


급 반성문을 써 보내었더니, 그제야 제빵을 배우며 빵 차림도 배워서 내게 해주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애써 마음을 준비하고도 서운한 내색 하나 없었던 게다. 지원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이는 내가 앞으로도 함께 나이 들어가고 싶은 사람 중 하나이다. 옆에서 시답지 않은 코치도 하며, 때로 밥 한 끼를 챙겨주기도 하고, 멀리서 서로를 응원하며 이 세상을 건너고 싶은 벗인 것이다.  


이 아이를 만나면 마음이 맑아진다. 이이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 내게 들어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 따뜻함으로 인해 다시 그 고마움을 돌려줄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오늘도 맑음.


2019.01.29 서울


/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과 존엄의 사이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