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캐러멜초당옥수수마들렌

마들렌도 사람도 한계는 없다.

by 거울새

기나긴 기다림 끝에 세상을 마주한 매미가 목이 터져라 울어대던 한여름의 합창이 끝이 났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온몸을 지그시 짓누르며 숨통을 조여오던 마지막 더위도 한바탕 쏟아지는 짧은 소나기와 함께 그 힘을 잃었다. 한밤에 몇 차례 강한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 같더니, 새벽녘 고요한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손끝에 어느새 가을이 묻어있다.


서늘한 바람에 몸이 먼저 반응하듯 나도 모르게 입안 가득 가을의 풍미가 맴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들렌도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동안 마트에 가지 못해 새로운 재료는 없었지만, 냉장고 한편에는 여름내 컨디션 난조로 미처 사용하지 못한 재료들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초당옥수수도 있었다.


초당옥수수는 올여름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재료 중 하나였다. 태어나서 처음 초당옥수수를 맛보았던 게 아마 작년이었나. 작년엔 조금 실망스러운 맛이었는데, 올해 맛본 제대로 잘 익은 초당옥수수의 맛은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알맹이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탁월한 수분감과 진한 단맛. 과일과는 분명 결이 다르지만, 확실한 단맛이 가득 들어찬 알맹이가 은근한 감칠맛을 뿜어내며 입안 가득 톡톡 터져나갔다. 이 풋풋하고 상쾌한 맛에 가을을 더할 순 없을까. 서늘한 바람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좀 더 무게감 있는 풍미가 필요했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무언가가. 불을 가득 쬐어 수분을 모두 내어주고 안 그래도 진한 단맛과 감칠맛을 극대화해 주는 그런. 그래, 군옥수수다. 거기에 장아찌 간장을 더해보자.


그렇다면 왜 뜬금없이 장아찌 간장을 떠올린 걸까. 이야기는 봄에서 시작된다.

작년부터 직접 명이나물을 구매해서 장아찌를 담고 있었는데, 올해 담근 명이나물도 제법 맛이 좋아서 제일 작은 통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그리고 갈 곳 잃은 장아찌 간장이 곧 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올해 각종 장을 이용한 마들렌을 만들겠다는 작은 목표가 있었기에 더없이 매력적인 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아찌 간장을 마들렌에 사용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잊혀 가던 차에 초당옥수수가 나타난 것이다. 물론, 초당옥수수에 대뜸 간장을 더할 생각은 없었다. 산미와 수분감을 잡아주면서도 진한 간장의 맛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만한 형태가 필요했다. 어쩌면 캐러멜. 간장 캐러멜이라면,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짭짤한 맛으로 초당옥수수의 단맛과 좋은 조화를 이룰 것 같았다.


그렇게 간장 캐러멜 초당옥수수 마들렌을 만들게 되었다.


장아찌 간장은 색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으므로 연신 맛과 농도를 살피며 신중하게 캐러멜을 만들었고, 초당옥수수는 구운 것과 페이스트, 두 가지로 준비했다. 페이스트는 껍질째 곱게 갈고 수분을 날려 아주 진득한 맛을 냈고, 구운 것은 마치 숯불에 구워낸 군옥수수처럼 약한 불에서 표면에 그을음이 살짝 내비칠 때까지 시간을 들여 서서히 맛을 응축했다. 거기에 아주 소량의 버터와 간장 캐러멜을 더해 다채로운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가을을 가득 담은 초당옥수수가 마들렌 위에 다시금 피어났다. 구운 초당옥수수를 정말 과할 정도로 마들렌 반죽 위에 한가득 올려주었더니 마치 튀김옷을 입은 듯 오돌토돌하고 멋스러운 외형이 완성됐다. 혹여나 간장의 맛이 너무 튀거나 짜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간장은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레 마들렌에 녹아들었고, 녹진한 초당옥수수의 달콤함과 감칠맛 넘치는 고소함이 간장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미각을 자극하는 쫀득한 구운 초당옥수수의 식감 덕분에 입안이 심심할 새가 없었다. 은근히 퍼져나가는 명이나물의 마늘 향은 아주 은은한 여운을 남겼다.


역시 재료에겐 주어진 자리가 없다. 여름 재료도 언제든 가을 재료가 될 수 있고, 간을 더하는 양념도 얼마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한계를 정해 놓으면, 결국 그 한계를 넘어설 수가 없다. 그리고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매번 마들렌에는 한계가 없다고 말하지만, 정말 한계가 없는 건 사람일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명확한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설적으로 아무런 한계가 없을 수도 있는 게 바로 사람이다. 자신의 한계를 지레짐작으로 정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그 앞에 기다리는 게 계속되는 실패라고 해도, 방향을 바꿔가며 끊임없이 나아가다 보면 결국 우리는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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