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뱅쇼 마들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음

by 거울새

사실 올해도 크리스마스 마들렌을 만들 생각이었다. 올해 크리스마스 마들렌의 주인공은 고구마. 가을쯤 우연히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꽤 신박한 마들렌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계획한다고 상황이 그대로 흘러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최종적으로 마들렌을 결정하는 건 결국 온전한 내 몫이 아니다. 언제나 가장 큰 변수는 내 건강이고, 그 변수는 올해도 어김없이 변덕을 부렸다.


무리하지 않으려다 보니 계획이 점점 지체됐다. 몸을 생각한다면 이제 새로운 마들렌을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을 정하기가 힘들었다. 마지막까지 건강이 발목을 잡는 것도, 계획된 멋진 마들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못내 못마땅했다. 그냥 욕심을 내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 한구석에서 일렁거렸다. 하지만, 그건 누굴 위한 일도 아니었다. 나를 위한 일도,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들을 위한 일도 아니었다. 그냥 내 욕심. 올해도 여전히 버리지 못한 그저 내 욕심에 불과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건강을 해치는 바보 같은 일은 하지 말자.


결국, 다시 새로운 마들렌을 준비했다.


처음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했을 땐, ‘오늘도 마들렌’이라는 이름을 썼었다. 매일 하나의 마들렌을 올리겠다는 아주 호기로운 마음이었는데, 이름이 무색하게 매일 마들렌을 올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다가 4년 전쯤부터 ‘거울새’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그 전의 이름은 헷갈리는 사람도 많았고, 뭐라 불러야 할지 곤란해하는 사람도 많아서 좀 더 직관적인 이름을 골랐는데, 사실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어쨌든 ‘거울새’란 이름엔 내 마들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배꼽을 아래로 향한 채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들렌의 모습이 ‘울새’와 닮았다고 생각해서 ‘살 거(㝒)’ 자를 붙여 ‘거울새’란 이름을 만들었다. ‘울새(=마들렌)가 있다’라는 뜻을 담고, 거울에 나를 비춘 듯 나를 담은 새라는 의미까지 붙였다. 물론 한자도 거울에 비친 듯 대칭이 되는 한자를 일부러 골랐다. 인스타그램의 아이디인 ‘vol(VOL)’도 사실 거울새의 자음인 ‘ㄱㅇㅅ’을 거울처럼 뒤집어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이름의 뜻을 담은 마들렌을 만든 적은 없었던 것 같아서, 이번엔 나의 이름을 오롯이 담아낸 마들렌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따로 새의 모양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미 매주 새로운 새를 하나씩 구워내고 있었으니까. 그저 고구마로 좀 더 직관적인 느낌을 더하기로 했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는 가끔 고구마를 얇게 채 썰어서 튀겨주시곤 했다. 달콤하면서도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고구마튀김을 정말 좋아했는데, 얇게 채 썬 고구마를 ‘둥지’ 모양으로 튀겨내면 어떨까. 거기에 연말 느낌이 가득한 뱅쇼의 풍미를 담은 마들렌을 올려놓으면 제법 귀여울 것 같았다.


물론, 만드는 과정은 그리 귀엽지 않았다. 뱅쇼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와인에 반건조 무화과부터 딸기 정과, 오디, 산딸기 그리고 유자 껍질까지 올 한 해의 기억을 한가득 담아 하룻밤 우려낸 뒤 과일을 함께 갈아내고 졸여서 향긋한 뱅쇼 페이스트를 만들었다. 마들렌 반죽에 뱅쇼 페이스트를 섞고, 뱅쇼 글라세를 겉에 발라주면 마들렌은 완성이었다. 문제는 고구마였다. 채 친 고구마를 그저 체 사이에 넣고 모양을 잡아 튀겨내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작업 난이도가 상당했다. 얇은 고구마를 태우지 않으면서도 형태를 유지한 채 고르게 튀겨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야만 했다.



그렇게 올해 마지막 마들렌이 완성됐다. 어머니가 튀겨주신 바삭한 고구마튀김을 입안 가득 밀어 넣고 따뜻한 뱅쇼를 한 모금 머금으면 이런 맛일까. 마들렌을 베어 물자, 그 모든 겨울의 따뜻함이 입안에 오롯이 담겼다. 고소하고 달콤하면서도 풍성한 향이 물씬 퍼져나갔다. 고구마튀김이 어울릴까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고구마튀김이 함께할 때, 뱅쇼의 다채로운 향이 한층 더 선명하게 빛났다.


노란 고구마 둥지에 살포시 내려앉은 보랏빛 뱅쇼 마들렌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고구마튀김과 함께할 때 더 빛났던 뱅쇼 마들렌처럼, 올해 나의 기록들도 나와 함께여서 좀 더 선명하게 빛났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올해도 그저 헤매기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아쉬움이 남더라도 분명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을 테다. 그러니 지금은 그냥 이 귀여운 아이를 온전히 즐기자. 올해의 마지막이 될 마들렌을 즐겁게 음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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