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캐러멜 마들렌

인생에 실패는 절대 없다.

by 거울새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어떤 마들렌으로 새해를 열어야 할까. 좀 더 특별한 마들렌으로 한 해의 시작을 장식하고 싶은 마음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수많은 재료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역시 처음은 언제나 어렵다.


몇 가지 이유를 들어 한 가지 주재료를 정했다. 부재료도 함께 정해서 전체적인 맛의 흐름을 잡는 데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각 재료를 어떤 형태로 구현할지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각자의 역할을 정하고, 전체적인 균형을 가늠해 본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세부적인 재료의 형태를 수정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추가적인 재료가 필요한지 고민한다. 모든 구성 요소의 역할이 정해지면, 세부적인 레시피를 구상한다. 그리고 현재의 컨디션을 살피며, 무리 없는 진행을 위한 작업 계획을 세운다.


새해 첫 마들렌을 만들 준비는 끝이 났다.


올해 첫 마들렌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하기로 한 일은 포도 시럽을 만드는 일이다. 기분 좋은 포도 향과 깊고 중후한 발효 향을 더해주기 위해, 재료는 포도가 아닌 와인과 발사믹 식초를 선택했다. 꿀처럼 진득할 정도로 졸여주는 게 오늘의 목표다. 만약 의도한 대로 완성된다면, 적당한 산미와 풍부한 향으로 주재료의 다소 무거운 맛을 깔끔하게 잡아주고 고급스러운 풍미를 더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포도 시럽은 내 생각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완성되어 갔다.


원하는 농도를 맞추려다 보니 시럽은 어느새 진득한 캐러멜로 급변하고 있었다.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시럽의 맛을 보니 이미 산미는 아주 희미해진 상태였다. 계획은 실패했다. 이제 원인을 분석해서 새로운 계획을 시행할지, 이대로 또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지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결국 나는 시럽을 좀 더 진득하게 태우고 버터와 생크림을 더해 포도 캐러멜을 만들었다. 포도 캐러멜을 입에 넣자 은근하게 퍼지는 캐러멜 특유의 쌉쌀함 뒤로 은은한 포도 향이 감돌았다. 아주 미약한 산미는 나름 깔끔하게 맛을 정리했다. 뒤이어 깊고 농후한 감칠맛이 혀끝에 남아 중독적인 여운을 자아냈다.


새해 첫 마들렌부터 실패하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지만, 사실 포도 캐러멜의 맛이 꼭 잘못됐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분명 매력적이었다. 차라리 아예 새로운 마들렌을 만들까. 완성된 포도 캐러멜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지금 작업을 중단하면 마들렌 포스팅 일정도 많이 늦어질 게 뻔했다. 일단 마들렌 반죽부터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포도 캐러멜을 중심으로 맛을 내고 몇 가지 요소를 추가하면, 괜찮은 마들렌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포도 캐러멜 마들렌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한 해를 여는 마들렌이라기엔 너무 밋밋하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냉정히 말하자면 단순히 캐러멜만 넣은 마들렌이 아닌가. 은은한 포도 향만으론 여러모로 부족했다. 그렇다면 마침 캐러멜이 꽤 찐득하니, 이걸 마들렌 표면에 올려보면 어떨까. 캐러멜을 뭉쳐서 반죽 군데군데 섞고, 호두도 굵게 다져 올리자. 다 구워낸 마들렌 위에 캐러멜을 찢어 올려 잠깐 더 구워내면 캐러멜의 특징적인 맛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다 잠자리에 들기 전 다시 멍하니 생각에 빠졌을 때, 문득 아이디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캐러멜을 얇게 펴서 올리면 어떨까? 캐러멜 겉면에 전분을 묻혀 얇게 밀어내고 그걸 마들렌 표면 가장자리에 올려준다면? 그리고 그 중심에 호두를 아주 곱게 다져 올려낸다면?


그래, 이거다.


이제 남은 건 생각한 대로 완성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올해의 첫 마들렌으로 포도 캐러멜 마들렌을 만들었다. 표면에 올린 캐러멜은 오븐 속에서 천천히 굳어 마치 얇은 유리막처럼 마들렌 표면을 포근히 감싸 안았다. 기분 좋게 부서지는 캐러멜의 바삭한 식감이 올해 첫 마들렌의 시작을 알렸다. 뒤이어 살짝 씁쓸하면서도 깔끔하고 깊은 풍미가 밀려 들어왔다. 아주 은은하게 번져가는 농익은 포도 향도 더없이 향긋했다. 따끈하고 부드러운 마들렌 속에서는 군데군데 뭉친 캐러멜이 진한 감칠맛을 자아냈고, 고소한 호두의 식감도 먹는 즐거움을 더했다.


‘인생은 성공으로 가는 과정만 있을 뿐, 실패는 절대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성공을 발견할 수 있다. 올해는 가슴속에 포도 캐러멜 마들렌을 간직한 채 나아가자. 실패는 절대 없다. 오직 새로운 성공으로 가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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