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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Aug 06. 2018

인생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을 곁에 남겨가는 것.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ㅡ 이도우





p388.

한때는 살아가는 일이 자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평화롭게 안착할 세상의 어느 한 지점. 내가 단추라면 딸깍 하고 끼워질 제자리를 찾고 싶었다. 내가 존재해도 괜찮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방해도 받지 않는, 어쩌면 거부당하지 않을 곳.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어디든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자리라는 것.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스스로가 하나의 공간과 위치가 된다는 것. 내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제자리라고 여기게 되었다. 가끔은, 그 마음이 흔들리곤 하지만.





 날씨가 더워서였을까, 내 마음이 더워서였을까. 한동안 책을 읽지를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읽고자 '노력' 했던 적은 많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나의 눈길은 검게 인쇄된 글자 위를 그저 미끄러지듯 흘러가버리고, 그리하여 나의 가슴에, 나의 뇌리 속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그런 하루하루가 이어졌었다. 누구에게나 한번씩은 있는, 그런 나날들이었다.



 이도우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그러던 나를 다시 책을 읽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은 없었다. 그저 뭔가를 읽고 싶은데 좀처럼 읽히지 않아서 갑갑한 마음 뿐이었다. 그러던 중, 그저 이 책의 제목과 표지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 흔하다는 소설의 첫 장을 읽는 수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집어들고 읽기 시작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 그리고, 그 결과 지금의 나는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p10.

이유 없이 슬퍼진다는 표현 자체가 틀렸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이유를 알지.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외면하고 싶으니까 모르는 척할 뿐이다.




 이 소설로 말하자면, 한 편의 수묵 채색화 같이 편안하고 부드러운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손으로 슥슥 문질러서 완성하는 따뜻한 파스텔화일지도. 어느 쪽이든, 이 소설은 참 따뜻하고 부드럽다. 문학적으로 매우 뛰어나다거나 문장이 수려하다거나, 그런 부류의 소설은 아닐지도 모른다. 플롯이 아주 짜임새가 쫀쫀하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편안한,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치여, 사회에 치여,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 중요한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듯한 사람들.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따뜻함. 각박한 현대 사회 속에서 치여 살아가다가도 이런 소설 한 권 쯤 읽고 나면 마음 한 구석 은은한 빛줄기가 내리쬐게 되는 것만 같다. 아마도 이 맛에 소설을 읽는 것이겠지.



 가슴이 답답하고 일도 안 풀리고 모든걸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고 싶은 마음이 들때, 이런 소설 한 권이 조그마한 도피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든게 끝날 것만 같은 곳에서도 사랑과 희망은 존재하며, 모든 것을 다 가질수는 없지만, 결국 인생이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 주위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면 되는 것 아닐까. 



 요즘처럼 푹푹 찌는 무더운 날씨에, 하얀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는 어느 한적한 동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원한 안식처가 되어 줄 것만 같다.





p400.

인생의 고통이 책을 읽는다고, 누군가에게 위로받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다 소용없는 건 아닐거라고... 고통을 낫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고통은 늘 거기 있고, 다만 거기 있음을 같이 안다고 말해주기 위해 사람들이 책을 읽고 위로를 전하는지도 몰랐다.








p119.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말하는 사람들이 가장 어렵다. 그렇게 섞여있는 진짜와 거짓은 알아차리기 쉽지 않으니까.



p199.

... 사실 유사 이래 모든 과거는 한번도 완료된 적이 없다.




p187.

예감은 틀리지 않고 의심은 늘 이루어지는 것.




p190.

인간은 지도를 바라보는 판타지가 있다. 꼭 보물섬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더라도, 어딘가 내가 꿈꾸던 완벽한 장소와 대상이 존재할 것만 같은 절실하고 아름다운 오해가 있다.




p191.

혼자일 때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고, 외로움에서 배우는 일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기대하는 바가 적을수록 생활은 평온히 흘러가니까. 진정으로 원하는 게 생기는 건 괴롭다.




p192.

눈동자 뒤에 그녀가 살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도 소용이 없다, 계속 보이니까. 사라지지 않는 잔상의 괴로움.



p268.

타인의 배려를 받고 신세를 진다는 건 고마운 일이면서도, 결국은 인생에서 크고 작은 빚을 만들어가는 일일 테니까.




p282.

"바닥을 쳤으니, 그걸 딛고 다시 올라가야지"




p303.

요즘의 나는 사랑을 하면서 무엇인가를 얻었고, 또 무엇인가를 잃었다. 잃었음을 알고 있는데, 새로 얻은 게 좋아서 무엇을 잃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p338.

인생은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을 곁에 남겨가는 거지




p399.

아직도 모자란 점이 많은 내 모습을 후회하기 전에 지금은 그냥 숨어야겠다는 생각뿐이지만, 이 마음이 가라앉고 나면 또 마주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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