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생아 돌보기의 시작 (1)
만지면 부서질것만 같이 작고 말랑말랑한 아기는 처음 병원 건물 밖으로 나와서, 난생 처음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 아기를 처음으로 뒷좌석에 태우고 운전을 하던 남편은 얼마나 긴장을 했었을까. 지금도 차의 뒷좌석에 앉아서 카시트에서 잘 자고 있는 아기와 룸미러에 비친 상기된 남편의 표정을 번갈아 보았던 그 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자신있었다. 몇 번이고 확인 또 확인해서 산후도우미 이모님도 제 날짜에 모시기로 예약을 잘 해두었고, 출산 전 아이 관련 물건들 세팅도 잘 해놨다고 자부했었다. 조리원 첫날은 바보였지만 3주가 지난 지금은 척척 생각대로 잘 되고 있었고, 그렇게 루틴대로 해나가면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 따지고 보면 조리원에서는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짜준 스케줄 속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던 루틴이었고, 신생아실 선생님 없이 24시간 나 혼자 볼 때와는 사뭇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아직 알지 못했었다.
처음으로 모신 산후도우미 이모님은 '이모님'이라는 명칭이 어색할 정도로 젊으신 분이 오셨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 딸아이를 키우고 계신 분이었다. 조리원에서 배운대로 아이의 월령과 체중에 맞는 정량대로의 분유를, 정해진 타임테이블에 맞춰서 주는 것 ─ 그것만 하고 나머지는 흔히 말하는 '먹놀잠' 패턴을 이어가면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리원에서도 약간은 느꼈었었지만, 아이가 젖병을 그다지 잘 빨아마시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쉬이 짐작할수 있었다. ─ 짧은 설소대.
병원에는 설소대 절개는 순전히 보호자의 의견대로 하시라고만 안내를 받았고, 설소대가 짧으면 크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거나 하진 않지만, 아기가 분유나 모유를 잘 못 빨수 있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애매했다. 무조건 잘라야해, 라고 하기엔 그럭저럭 분유를 먹어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 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는 '귀찮음'이라는 것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기도 했다.
설소대 시술을 받게 되면, 아이가 당분간은 더 잘 안먹을 수도 있고, 혀가 아프니 엄청 보챌 것도 분명하거니와, 상처가 입속이기 때문에 잘 아물 수 있도록 신경도 계속 써야할 일이었고, 만에하나 상처가 덧날 가능성도 있을 뿐더러, 더러는 설소대를 한번 잘라내고도 짧아서 몇 달 지나서 또 시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는 등 이제 막 출산하고 육아를 시작한 초보엄마로서는 머리가 복잡해지게 하는 시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조그만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또 병원 갈 생각을 하니, 마음한켠에서 피어오르는 안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 속으로 숨고만 싶었다.
하지만 결국 ─ 나는 설소대 절개를 결정한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설소대로 이름있고 경험이 많은 의사 선생님을 찾아 가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남편이 동행할수 있는 주말에는 시술자체가 불가능해서, 평일에 산후도우미 관리사님과 둘이서 아이을 데리고 병원까지 자차로 다녀오기로 했다.
설소대 절개는 정말 순식간에 끝이 났었다. 경험많고 나이 지긋하신 의사선생님의 손길로 한번에 착! 잘라내는 순간, 아이는 자지러질듯 울음을 터뜨렸고, 선생님께서는 아이 혀 밑을 꾹 눌러서 지혈을 잘 하라고 하셨다. 눈물을 멈추지 않는 그 꼬물꼬물 조그만 아기의 입속에 손가락 두 개만 넣고 거즈로 꾸욱 누르면서 지혈을 하는 작업은, 사실은 꽤나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시술이 끝난 그 순간, 동행했던 산후도우미 관리사님이 지체없이 바로 꾸욱 눌러주셨고, 그 상태로 상당히 오랜시간을 버텨주셨다. 아마 나라면 그렇게 안정적으로 지혈을 못하고 계속 아기를 보며 아픈 마음에 흔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때의 산후도우미 관리사님께 참 감사한 마음이다. ─ 그리고 그 때 설소대 절개시술을 받기로 한 내 결정 역시 참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진심어린 조언과 고민을 함께 해 주신 친정부모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