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약사 Sep 01. 2016

흔한, 서른 살

ㅡ 나에게 서른이란,





나에게 서른이란,




나에게 서른은, 그냥 스며들듯이 찾아왔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즐겨 듣지도, 주변 사람들이 이제 3자 달았냐고 놀리는 소리가 와닿지도 않던 시간 속에서, 그저 화선지에 먹물 한 방울 떨어져 젖어들듯이, 그렇게 찾아왔었다. 어쩌면 나에게 서른이란, 아무런 의미없는 숫자에 불과했었고, 오히려 주변에서 유난을 떨어서 의아스러웠었다. 나에게 서른이란, 그저 오오츠카 아이 류의 밝고 명랑한 음악을 좋아하던 내가 김동률의 노래를 찾아 듣는 것, 그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흔한 서른살을 갯벌에서 밀물을 받아들이듯이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남들처럼 유난떨지도, 자랑하지도, 우울해하지도 않고, 그저 밀물이 차오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휴양객마냥, 갯벌에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서른 살의 흔한 고민을 했고, 서른 살의 흔한 유희를 즐겼고, 서른 살의 흔한 외로움을 만끽했다. 스물, 이라는 단어보다 이상하게 부드럽게 넘어가는 '서-른'이라는 발음이 마음에 들어 혼잣말로 속삭이기도 했었다. 자음 'ㄹ'로 마무리되는 딱 끊기는 느낌보다, 'ㄴ'의 은은한 잔음이 퍼져가는 기분이, 나즈막한 언덕길에서 맞는 고요한 산들바람 같기도 했었다.











 잘 모르겠는 시간들이 흘렀고, 잘 알 것 같은 시간들도 있었다. 이십대의 나는 잘 모르겠는 것들은 반드시 알아내고 싶었고, 모호한 것들은 분명하게 하고 싶었었다. 분명하지 못한 것들에 답답해 했고,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파헤쳐서 알아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도태되는 것 같았고, 그렇게 지적 갈증에 허덕이면서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먹어치웠었다. 옆사람들도 그렇게 다들 자기앞의 것들에 허둥거리고 있었고, 무엇을 위해서 그리도 마음만 급한지 채 알기도 전에, 단지 뒤쳐지는 기분이 싫어서 내달렸다.




단지,
뒤쳐지는 기분이 싫어서 내달렸다





 하지만 ㅡ 이제는 안다. 내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내달린다고 해서 앞서가는 것도 아니고, 내달리지 않는다고 해서 뒤쳐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뜨는 해를 보면서만 희망을 떠올리지 않고, 지는 해를 보면서도 내일의 희망에 가슴이 벅차 오를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는 것. ㅡ 그것은 남들이 말하는 것보단, 나에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행복한 그 무언가이기에, 서른을 겪는 나는 이토록 감격스러울 수 밖에.




언젠가 마흔이라는 고개에 도달한다면 삼십대의 나를 다시 회고하게 되겠지만, 아마도 나는 이 서른을 기분좋게 기억할 것 같다. 내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고,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더라도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고, 마음의 무게중심이 더욱더 단단해진 지금. 내 마음에 대들보 하나, 떡 하니 박아두고서 한숨 돌리고 있는 지금. 지금의 기분은, 해 뜨기전 시작한 새벽산행 후 정상에서 뜨는 해의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흡사할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서른은,
우리의 서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여유롭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지, 고개를 들었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