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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Jan 10. 2017

착한 도깨비들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이야기

《립반윙클의 신부》 ─ 이와이 슌지






마음씨 착한 도깨비의 집입니다.
누구든지 들어오세요.
맛있는 과자가 있습니다.
차도 끓여 놓았습니다.
-  하마다 히로스케 「울어 버린 빨간 도깨비」





 립반윙클의 신부. 그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당연 영화였다. 나의 청춘에, 따뜻한 눈을 소복히 쌓아줬던 이와이 슌지 감독, 그 이름 만으로도 나는 두근거렸었다. 그게 바로 나의 "립반윙클의 신부"였다.



하지만, 늘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하더라도 어영부영 보내다보면 막을 내리기 일쑤인 나의 일상에, 제아무리 이와이 슌지라고 할지라도 역시 나는 영화를 놓쳤었다. 다만 주변에서의 감상후기는 종종 접했었는데, 대부분의 반응은 고구마같이 퍽퍽하고 답답하더라라는 것이었다. 다만 대학 절친의 결혼식장에서, 나와 감성이 비슷한 친구들은 강력추천한다고 말해줬을 뿐.



그렇게 잠시 잊고 있었던 영화가,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방식으로, 그렇게, 책으로 나에게 왔다.





p51.

타산적이다....
하지만 타산의 조각을 산더미같이 쌓아올려야 사랑의 형태가 보인다.
이는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싶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어떻게  표현 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뭐라고 터져나올 듯 터져나오지 않는, 그 표현되지 않는 답답함. 이 책은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해피엔딩인가, 새드엔딩인가. 일본 작품들의 결말들이 대다수 이도 저도 아니게 열린 결말로 끝난다는 것 쯤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 스토리는 그 차원을 넘어서 버린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만 같다. 모래사장에서 두 손으로 한참을 휘저었는데, 정작 내가 손을 움켜쥐면 모래들이 스르륵 다 빠져나가 버리는 기분. 이 책은, 이와이 슌지의 이 스토리는, 정말이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스토리다.



진실과 가식이 섞여 있고,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고, 호의와 악의, 믿음과 배신, 인간적임과 비인간적임이 뒤엉켜 있어서, 어디부터 진실인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헷갈려하는 중에, 그냥 이 스토리는 막을 내린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제각각의 진실만을 믿고서, 그 모두를 아우르는 진짜 진실의 장막은 걷히지 않고서, 그저 그렇게 살아가버린다. 아, 어쩌면 립반윙클의 신부, 나나미는 이끼 낀 돌 같았다. ─ 그래. 이끼 낀 돌. 분명히 이끼에 철저히 이용당하는 돌이지만, 돌에 있어서는 과연 이끼가 필요한가 싶은, 하지만 돌은 그 이끼를 고마워하고 곁에 두려고 하는, 묘한 상황. 어쩌면 그건 공허함과 외로움 때문일까. 혼자 쓸쓸히 발가벗겨지는 돌이 되는 것보다, 자신이 이끼에게 무한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이끼를 찾는, 그녀는 순진한걸까 어리석은 걸까, 착한 걸까 바보같은 걸까.





p266.

나에게는 행복의 한계가 있어. 더이상은 무리다 싶은 한계가 그 누구보다 더 빨리 찾아와. 그 한계가 개미보다 작아. 이 세상은 사실 행복으로 가득 차 있어. 모든 사람들이 잘 대해 주거든. 택배 아저씨는 내가 부탁한 곳까지 무거운 짐을 날라주지. 비 오는 날에는 모르는 사람이 우산을 준적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쉽게 행복해지면 나는 부서져 버려.





 솔직히 이러한 플롯의 스토리를 굳이 영화로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일본문화 특유의 찝찝하고 이도저도 아닌 결말을 좋아하는 나 조차도, 이런 결말은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와이 슌지의 영상과 연출은, 조금은 궁금해진다. 아마도 그는 이 스토리를 자신의 영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낸 것일텐데. 그러기에 그의 결과물에 더욱 호기심이 생긴다. 다만, 그 호기심은 이 스토리의 찜찜함을 저당 잡아야만 할테지만.




이와이 슌지의 영화 "러브레터"가 순백색의 하얀 이야기 였다면, 나는 이 소설은 '시린 파란 색의 이야기'라고 부르고 싶다. 회색 섞인 하늘에서 빗방울이 시리게 내리는 이야기. 그런데도 그 우산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따뜻했던 이야기. 이 글을 마무리 짓는 지금 이 순간 까지도, 나는 이 소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 이와이 슌지는 또다시 이러한 스토리를 만들어내 버렸다 ─ .













사람은 모두 안전하고 평화로운 장소를 바라죠. 하지만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본능 또한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그 충동을 가상의 존재로 치유한다고 할까요? 드라마나 뉴스, 스포츠, 게임도 다 자신들의 내면에서 적출해 접시 위에 올려놓은 본능 세포라고 할수 있어요.




참된 빛으로 가득찼을 때가

언제인지는 지나간 후에야 알 수 있어

누군가가 문 앞에서 위로해도

다 잊었다고 대답할 수 있겠지

사람은 잃어버린 것을.

가슴속에 아름답게 새길 수 있기에

언제나 언제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내일을 맞이 하지.




@캄파넬라

고마웠어요. 잘자요. 립반윙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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