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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Apr 08. 2017

그 많던 봄은 어디 갔을까

ㅡ 사라져가는 '봄'에 관하여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계절은 봄이었다. 초등학교 교문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따라 샛노랗게 드리워진 개나리 꽃을 좋아했고, 새학기를 맞은 교실 특유의 싱그러운 향을 좋아했다. 새로 배정받은 담임 선생님께서 꾸며놓은 파릇파릇한 초록 게시판이 좋았고, 산 지 얼마 안된 청소도구의 빳빳함이 좋았다. 현장체험교실이라도 할 때면, 녹색의 뒷산에 핀 분홍색 꽃이 진달래인지 철쭉인지 아이들과 내기 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봄의 새로움과 설렘과 싱그러움과 그 생명력을 좋아했다. '봄'이라는 단어에서도 느껴지는, 그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몽글몽글한 기분을 사랑했다. 그 몽글몽글한 기분으로,  마치 봄 아지랑이 위를 걷듯이 동동동 떠다니는 기분을 즐겼었다.









이번 주말엔 벚꽃이 만개할 것 같애





 지난 주에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했던 말. 하지만 그 설렘과 기대는 단 몇 일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참 짧았다.
아쉬울만큼 짧았다.
우리들의 봄은.





벚꽃이 필거라 기대한 그 주말엔 미세먼지 품은 빗방울이 들었고, 하루이틀 맑아져서 벚꽃이 예쁘게 만개했지만, 마치 그런 우리를 기죽이듯이 천둥번개를 동반한 봄비답지 않은 봄비가 내렸다. 후두둑 후두둑 세찬 빗방울과 함께 벚꽃잎도 같이 내렸다. 그리고 다시 이틀후, 봄이라기엔 조금 후덥한 기분의 날씨 ㅡ 아, 금방 여름이 될 것 같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의 봄이 이토록 짧아진것은.





온난화라든가, 아열대성 기후라든가, 빙하가 녹는다거나, 환경이 오염되었다거나, 그런 지리적 생태적 의미의 이유를 모르는건 아니지만, 짧아진 것은, 비단 계절적 봄만은 아닌것 같기에, 가슴 한 구석이 더 쓸쓸해진다.





언제부터였을까. 새 학기, 새 직장, 새로운 모든 일들의 설렘이 이토록 짧아진 것은. 봄처럼 따뜻하고 밝고 싱그러운 기운들이 쉽게 사라지고 마는 것은. 세상이 이토록 편해졌는데에도, 우리의 마음은 더 여유가 없어져버린 것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신호에 애매하게 걸려버린 어느 차가 횡단보도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걸 보고, 왠지 그 차의 타이어에라도 화풀이를 하고 싶을 때.  브레이크가 오래된건지 급정지를 자주 해서 손잡이 잡고 서 있는 게 힘에 겨운 시내버스 안, 괜히 옆사람의 발꿈치가 거슬려서 짜증이 날때. 업무를 하다가도 상대에게 좀더 자세하게 알려줘도 될 법한 일에 대해서, '이 정도도 눈치껏 못해?'라는 심통이 올라와 사무적으로 대충 알려주고 귀찮아 할 때.





ㅡ 아, 내 마음 속의 그 많던 '봄'은 어디로 갔을까.










이 계절, 오는 듯 멀어져가는 봄을 보며, 나는 내 안의 오래된 봄을 불러본다. 봄비처럼 흩날리는, 지는 벚꽃잎 하나 손바닥에 올려놓고, 그동안 잊고 지내서 미안하다고, 조용히 나의 봄에게  말을 걸어 본다.




지는 벚꽃잎을 날씨 탓으로 원망할 수 없듯이, 나의 시들어간 봄을 환경 탓만 하며 원망하지 않으리라. 세상이 각박해서 여유를 잃었노라 변명하지 않으리라. 벚꽃잎이 진다고 벚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봄이 지나간다고 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받아들일 것은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시간은 가슴으로 품어 감내하며, 벚꽃이 진 자리에 그 뿌리는 그 자리에 한결같이 있음을 알기에, 나는 이 짧아진 봄을 슬퍼하지 않으리라. 봄은 언제나  마음 속에 있는 것이기에. 나는 내 마음 속의 봄을 불러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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