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약사 Aug 07. 2016

살아있는 것, 그 존재에 대한 고찰

《28》- 정유정







《7년의 밤》으로 유명한 작가, 정유정. 그녀의 작품 《28》. 한국 현대소설을 잘 안 읽는 내가 이 책을 집어든 것은, 나에게 《살인자의 기억법》을 소개해준 지인이 언급했던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순전히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 단순한 호기심으로 집어든 책.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의 짧은 문장력으로는 이 소설의 느낌을 축약할 수가 없다.

단순하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빠져든다"─.  거침없이 휘몰아치는 소설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두 세계가 공존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소설 속 세계와 나의 현실 세계. 다소 뻔한 표현에, 유치한 발상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런 의심이 든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 고 권하고 싶다.



원인 모를 괴질 전염병으로 인한 재난 이야기. 하지만 이 소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탄탄한 스토리. 휘갈겨 쓴 듯한, 그러나 그러기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표현력. 소설 속 캐릭터들의 매력과 개성. 삼박자가 딱딱 맞아 떨어지면서, 소설 속 곳곳에는 여러가지 장치들이 숨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소설을 읽어가다가, 그런 장치를 만남으로써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현 주소는 어떠한가─'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존재의 타당성을 지닌다"
- 작가의 말 中 -



참담한 현실 속에서 인간이 지닌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악'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간의 우월주의와 이기주의. 그 앞에 모든 생명은 '생명'이 아닌 '대상'이 되고,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잔인하게 제거하고야마는, 인간의 폭력성과 잔혹함. 생존 본능이라는 무서운 기치 앞에서 모든 선과 정의가 무너져 내리는 현실. 그 안에서 인간은 "선택권"을 가진다. 폭력성에 무릎을 꿇고 그 길을 택하느냐, 아니면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자신의 가치를 잃지 않느냐. 과연 나라면 어떤 길을 택하게 될 것인가. ─ 이런 반문을 던져본다면, 우리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을 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는 '서재형'이 될수 있을 것인가. '나'를 잃지 않고 정도(正道)를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반려견과 유기견의 문제, 인간의 쾌락주의와 이기주의의 팽배, 언론이라는 양날의 칼이 지닌 무서운 힘, 진실과 다른 사실들의 세계, 가족이라는 가치가 무너진 채 보이기 위한 삶을 사는 한 가족의 처참한 말로,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어느 선량한 시민들의 무고한 죽음... 이 소설 속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고, 그래서 우리의 머리는 아프고, 귓가가 시끄럽다. 하지만 ─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라고 각자 정유정은 과감하게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이 어떻게 완성되어 갈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다름 아닌 우리에게 달려있다.







"인간은 본시 자기 앞의 구멍을 못 봐요.

시신경이 망막을 관통해 뇌로 가기 때문에 망막에 맹점이 생기거든.

그저 거기에 그것이 있으리라는 추측이 그 구멍을 채우는 거지."





그때 살려고 애쓰는 것 말고는 무엇이 가능했겠냐고.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모듬으면 덜 쓸쓸할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알고는 있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유의 일이었다.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과 직면하는 게 겁이 났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은 모르는 게 나았다.

모르는 동안은 절망과 맞닥뜨리지 않아도 될테니까.





"어떤 스캔들 속에서도, 어떤 정치적 외압 속에서도,

인간 개개인의 진실은 함부로 도륙당해서는 안된다는 깨달음.

아름답고 화려한 시절에 선행을 베풀기는 쉽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은,

정말 우리 자신의 참된 자아를 증명하는 것은,

참혹하고 비통한 시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살아 숨쉬는 인간성'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말 中 -







매거진의 이전글 파도처럼 밀려와줘요. 나를 찾아 헤엄치겠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