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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Jul 19. 2017

사랑은, 물들어가는 거예요.

─  영화《내 사랑 (Maudie)》, 감독 에이슬링 월쉬


* 제 리뷰에는 스포일이 담겨있습니다 *






요즘 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가 없던 차에, 내 눈앞에 나타나 준 영화.

나는 언제나 '실화'에 매료되는 것만 같다.

어차피 허구와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지만, 나는 역시 그 허구가 진실을 바탕으로 할 때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 이 영화는 실화다 ─ .












관절염을 앓고 있어 걸음걸이도 이상하고.

어릴적 친오빠와의 관계에서도 안 좋은 기억이 있어 정신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고.

사회성이나 자기 앞가림 능력도 조금 떨어지기에,

집안에서 팔푼이 취급을 받으며

가족들이 돌보기를 귀찮아 하는 모드.











그리고

생선장수라고는 하지만 생선이든 뭐든 팔수 있는 것들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고.

무뚝뚝하고 이기적인 사람 같지만 건실하게 모은 돈으로 집을 장만하고.

자기가 자란 고아원 일을 거드는,

혼자임에 익숙한 남자, 에버렛.





그런 그의 가정부로 지원하게 된 모드.

어쩌면 가정부 구인공고를 내러 가게에 들어서던 순간부터

모드는 에버렛에게 끌렸던 것일까.










온갖 추문에 휩싸이고.

에버렛의 무시와 폭언을 받으면서도

묵묵하고 밝게 자기 할일을 하는 모드.










모드는  가정부로 들어온 그 집에서,

시간 날 때마다 여기 저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우연히 에버렛과 생선을 거래했던 산드라에 의해서

그녀의 그림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자기 밖에 모르고 모드를 무시하기만 했던 에버렛의 마음이 변하고.

모드가 그 집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

전혀 다른 그 둘이 점점 서로에게 물들어 가는 시간들.

그 모든 장면들이 물 흐르듯이 전개된다.




죽어도 그림 그리는 모드 대신 집안일 안 할거라고 하면서도

빗자루질 이것만 할거라며 슬슬 비질을 하는 에버렛과,

그런 그에게,

그림 말리는데 먼지 난다면서 타박하는 모드.




죽어도 덧문 달아주지 않을거라며,

스크린 도어같은 소리 하지말라고 소리쳐놓고

덧문 단다고 못질하는 에버렛과

그런 그를 보며 빙그레 미소짓는 모드.




지루한 듯 조용하게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 띄우게 하는 영화.











처음에는 심한 말을 퍼붓는 에버렛을 보면서 어떻게 저럴수 있냐고 화가 나다가도

어느정도 보고있고 나면, 

아ㅡ 이 사람은 표현을 못하는 사람이구나.

아ㅡ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는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아내가 보여.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





가족도 없이, 사랑받지 못한 채 지내면서

세상에 오직 자기 한 몸만 건사할 줄 알았던 남자.

세상과 벽을 쌓아 뒀던 남자.

그랬던 에버렛은,

그런 자기 옆에서 자기 할 일을 하면서 따뜻한 집을 만들어가는 모드에 의해 점점 마음이 열렸던 걸까.












내 인생 전부가 이미 액자속에 있어요.





시작은 작은 엽서에서.

그리고 판자크기의 그림.

나중에 가서는 닉슨 부통령이 살 정도로

예술적 가치를 지닌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로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게 된 모드.



하지만 모드와 에버렛은 그 모든 유명세와 타인들로부터의 인정보다도

둘이 함께 하는 생활에 더 가치를 두는 것 같았다.

그 어떤 유혹이나 그 어떤 유명세보다도

둘이서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는 것.





낡은 양말 한짝처럼 보기 좋잖아요.





이미 세상에서는 다칠 만큼 다치고

이미 사회에서는 동떨어져 지냈던 두 사람.

그들은 이미 타인에게선 초월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서로에게 '한 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여느 재밌는 로맨틱 영화에서 나올 법한

흥미진진한 기승전결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혹자는 '지루하다'든가 '졸린다'라는 표현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많은 생각을 남긴다.

그렇게 가문의 먹칠거리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모드가

결국에는 그 집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은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

부족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풍족했던 그녀.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삶.



불타는 정열이나 소용돌이처럼 빨려들어가는 사랑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들여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과정.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함께 가득 채워가는 시간들.





'사랑'에 대해 세상에서 만들어 놓은 이미지들이 너무 많아서.

마치 그런 류의 '사랑'이 아니면 사랑이 아닌 것만 같았던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영화.










ㅡ 그렇다. 이 영화는 실화다.

영화같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실화다.





그러기에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까만 화면을 바라보면서

왠지 쉬이 자리를 일어서지 못한다.

마지막의 에버렛의 눈빛이 애절해서.

마지막까지 붓을 쥐고 있던 모드의 손가락 잔상이 눈에 남아서.

그리고 실제 인물들의 영상을 보면서

그들의 애틋함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져와서.











귀에 거슬리지 않고.

주제와 화면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적시는 배경음악 또한 좋은 영화.




얇은 종이에 파스텔톤 수채화를 그리듯

그 잔잔하고 아련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꼭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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