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약사 Sep 05. 2017

후회와 회환, 그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의 바닷가에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ㅡ 오기와라 히로시







오랜만에 일본소설을 읽었다. 다른 책을 보러 들어갔던 서점 한 켠에서, 일본문학 섹션도 아닌데, 자신이 속하지 않은 공간에 오도카니 뉘여져 있는 이 책에 이상하게 눈길이 갔었다. 누군가 구매하려고 가지고 다니다가 무심코 두고 간 것일까, 혹은 누군가 구매하려다가 변심해버리고 만 것일까. 나는 그렇게 어색하게 누워있는 이 책을 데리고 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일본문학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모든 일본문학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부류는, 일본 특유의 내재된 감성. ─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고 알게 모르게 살짝, 내비치는 그런 류의 감성. 다이나믹한 스토리로 독자를 흡입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으로 독자를 젖어들게 하는 것. ─ 나는 그런 느낌의 일본 문학을 좋아한다.




아마 제가 모든 것을 거울 너머로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똑바로 마주하면 괴로우니까 말이죠.



 이 책은 그리 길지 않은 여러 소설들이 한 데 묶인 모음집이다. 하지만 그 별개의 소설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애틋한 감정이 있다. 어린 나이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딸을 마음 속에서 보내는 과정, 강압적이고 히스테릭한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십수 년간 등 돌리고 지내다가 다시 찾은 본가에, 우두커니 남아있는 치매걸린 어머니와의 재회, 연애시절의 달콤함이 사라진 채 남편에 대한 불만이 커져가는 자기자신을 보게되는 아내, 젊은 날의 한 번의 실수로 아내와 아들을 떠나야했던 어느 이발사를 수소문해서 찾아온 그의 아들, 허세가 심한 아버지께서 물려주는 시계를 고치며 상념에 잠기는 아들.



 그 중에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우발적인 범행으로 살인을 저지른 어느 이발사와 그의 손님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소설의 끝,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 손님이 아들일거라는 묘한 느낌만 남겨두고 소설은 마침표를 찍는다. 나는 일본소설의 이런 부분들이 참 좋다. 그래, 내가 당신의 아들이오,라고 떠들지 않고, 혹시 내 아들인거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이발사의 심정을 보란듯이 보여주지 않고, 소설은 그렇게 슬쩍 문을 닫아 버린다. 정말 대충 읽는 독자는 놓치고 지나가 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단지 못내 아쉬워, 다시 한번 와 줄수 있겠냐는, 백발 성성한 어느 노(老)이발사의 대사가 아련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그 외에도 그토록 미워하던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있는 것을 목도하는 딸의 감정처리 역시 그렇다. 엄마 미안해, 하면서 엉엉 울지 않는다. 가슴아픔과 약간의 후회, 혹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자기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보란듯이 떠드는 형태를 절대 취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독자에게 넘겨버린다. 인간의 진짜 내면은, 우리가 흔히 접하듯이 길바닥에 누워서 주변사람 다 들으라는 듯이 떠드는 것에 있지 않은 것 아닐까. 정말 묵직하게 우리 가슴 속에 담겨있는 그런 진솔한 감정은 삼키는 것, 바로 그 삼키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꾸역꾸역 감정을 밀어넣고 삼킨 그 자리에, 마치 갈아엎은 논을 재정비하듯이 다시 흙을 다지고 씨를 심어 다시 자라게 하는 것 ─ 그것이 진실된 감정이 아닐까. 그리고 그 삼킴과 노력이 가슴 아프게 주변에 전해지는 것. 적나라하게 명명백백하게 떠드는 것의 가벼움을 아는 사람들의 묵직한 감정처리 ─.





신경 쓸 거 없어.
타인을 자기를 비추는 거울로 생각하지 않으면 되는 일.



인간 내면에 대한 일본 특유의 성찰과 고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설들. 슬픔과 갈등을 풀어가는 그들의 방식이 참 담담해서 좋다.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긴박감이나 반전스토리의 유희는 없을지도 모른다. ─ 아니, 없다. 하지만 마치 철컹철컹, 지상철을 타고 가면서 무심결에 바라보는 차창 밖 풍경마냥, 그렇게 물 흐르듯 흘러가는 유려한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이해하게 되고, 동시에 이해받게 될지도 모른다.



오기와라 히로시. 그가 다루는 소설 속 인물들, 그 인간 군상들은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라고, 소설은 소설이라고 쉬이 넘겨버리기엔 이상하게 이 책이 무겁다. 내가 살인따윌 저지를리가 없잖아, 우리 엄마는 나를 저렇게까지 몰아붙이지 않으니까 괜찮아, 내 아이가 갑자기 사고로 죽을리가 없잖아,와 같은 1차원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다. 그 힘들고 슬픈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 돌아가신 아버지의 못난 부분을 이제서야 들춰보게 되는 순간의 자식된 마음, 그것이 우리 안에서 과연 일어나지 않을 일이란 말인가. 우리의 마음 속에도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누구나 시곗바늘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죠.




그렇다. 누구나 시곗바늘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은 한다. 그런 생각이 들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결국은 그런 일들은 생겨버리고 만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일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후회될 일, 슬픈 일, 가슴 아픈 일, 의도하지 않은 일들은 수없이 발생하고 말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무너져야 하는가. ─ 결코 아니다. 소리쳐 억울하다고 슬프다고 드러누울 것이 아니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거울에 반사된 모습만 보려할 것이 아니라, 그 슬픔과 후회에 직면해야 한다. 그런 다음, 담담하게 살아가야 한다. 후회와 슬픔을 가슴으로 삼키면서도 부정적으로 빠질 필요는 결코 없다. ─ 시곗바늘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있으니까.









p107.

일이란 결국 타인의 기분을 헤아리는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p264.

그때였습니다. 내가 깨달은 게, 시계가 새기는 시간은 하나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다른 시간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p267.

시곗바늘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있다. 아버지에게 물려 받았던 팔락팔락 넘어가는 시계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80년을 이어온 행복 지침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