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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Sep 13. 2017

오직 그 '이후'를 견뎌 낸다는 것

《오직 두 사람》 ㅡ 김영하







그냥 감당해. 오욕이든 추문이든.
일단 그 덫에 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인생이라는 법정에선 모두가 유죄야.





 4년 전 쯤이었을까. 국내문학은 이상하게 손이 안가던 시절, 나에게 두 작가를 소개시켜준 사람이 있었다. 그의 추천작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 정유정의 "28". 나는 그 두 권의 책을 반신반의 하는 마음으로 집어 들었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국내소설에 손을 자주 뻗기 시작했던 것이. 그리고 작가 김영하씨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




 

p92.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 지금은 날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야. 물론 그 마음이 진심이란 것 알아.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게 꼭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어.




 이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수없이 새삼 느꼈다. ─ '다크'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현시대의 소설가에 대해서 감히 이런 류의 형용사를 쓰게되는 점은 양해바란다. 하지만 나는 김영하씨의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늘 그의 글은 꽤 암울하고 어둡고 을씨년스럽다고 생각했었다. 이 소설 모음집 역시 그렇다. 끊임없이 눅진눅진한 어둠속으로 우리를 빨아들는 기분이었다.



 호불호를 나누자면, 나는 솔직히 이런 '다크'에 대해서는 불호 쪽일것이다. 심지어 이 책에 실린 모든 소설의 끝은 그 다크에서 헤어나오지 못한채, 그 갑갑한 어둠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끝나버린다. 이런 류의 암울한 이야기, 솔직히 나는 그다지 읽지 않는 편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또다시 단숨에 읽어버렸다. 도입부분부터 신선한 소재로,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모호함과 호기심 때문에 끌려들어가서는, 발버둥칠수록 끈적끈적함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늪처럼, 독자는 그의 소설 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아니, 소설이 독자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주먹이 날아오면 이렇게 잘도 피하면서
왜 영혼을 노리는 인간들에게는
멍하니 당했냐는 거야.





 역시 김영하다. 그의 간결하면서도 단호한 문체, 창의적인 플롯. 우리는 그저 그의 이야기 속에 그대로 흡입되어 버린다. 나처럼 그러한 어두운 스토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독자조차도, 그의 이야기의 끝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느꼈던 스릴있는 반전따위는 없었다. 그저 그 구렁텅이 속에서 발버둥치다 발버둥치다, 결국은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들. 책을 덮고 나서의 그 찜찜함은 독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오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읽어 봄직한 소설들임엔 틀림없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ㅡ 작가의 말 중



 

 이 소설의 어떤 문구보다도, 나는 제일 마지막 '작가의 말' 중에 있었던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말이 계속 머릿 속에 웅웅 울렸다. 인간의 고독, 후회, 절망까지 ─ 완벽히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 존재한다는 사실─. 어쩌면 그의 소설들의 엔딩들은 바로 그 회복 불가능한 시점에서 마침표를 찍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시점이 연속선상에서 끊임없이 ─ 기적적으로 그 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시점을 전혀 가늠할 수 없다 ─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된다.




 정말 힘든 일을 겪은 사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사람,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그 문제의 잘잘못을 따지고 누가 원인인가를 따지는 것이 무색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아무리 과거를 헤집어놓는다 할지라도 현재의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테니까. 과거는 과거일뿐 지금부터도 쭉 그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어느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 각자는 이미 그러한 상황을 한 번 이상을 경험하였는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정도차이는 있겠지만.

 



 그리하여 작가 김영하의 예리한 통찰이 독자의 뇌 속을 관통해서 지나간다. 우리도 이 소설 속 주인공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우리 역시 어떠한 순간이 닥쳐오고,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밖에 할수 없는, 절망적이라면 절망적이고 희망적이라면 희망적인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아─ 역시 김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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