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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Oct 10. 2017

진정한 복수는 마음을 비워내는 것

《예언》 ㅡ 김진명






진정한 복수는 마음을 비워내는 것일 거예요.






 김진명. 한국 소설이라는 나무 간판이 있다면, 김진명이라는 세 글자는 꽤나 굵직하게 새겨져 있지 않을까. 참 오랜만에 그의 책을 들었던 것 같다. 어릴 적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을 읽었을 때의 가슴 두근거림이 꽤 오래 남아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두근거림이 마냥 기분좋은 두근거림만은 아니었던 기억에, 꽤 오랜기간 그의 소설을 멀리 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용기가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소설을 읽을 용기가.




 어쩌면 요즘 한국 문학계의 흐름 속에서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사실 나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꽤 많은 사람들의 우선순위에서 그의 소설이 밀려나고 있는 듯한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김진명의 소설이 싫지 않다. 조금은 시대착오적이고, 뻔한 주제 ─ 예전에는 결코 뻔하지 않았던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 를 다루고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그의 소설을 응원하는 편이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하는 김진명 특유의 플롯을 이번에도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KAL기 폭파사건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실, 하지만 우리 세대에서는 생소한 사건을 모티프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그의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미국, 소련, 일본, 한국으로 이어지는 국가간 이해관계를 조밀조밀 풀어내었다. 다만, 이 소설의 해결자랄까, 중심이랄까, 그 해결의 중심축이 조금은 허무맹랑한 감이 없지 않아서 집중력을 흐트려 놓을때가 없지 않았다. 그래도 김진명이 바라 본 '소련' 즉, 붕괴한 '공산주의'에 대한 관점은 매우 단순명료하면서도 예리해서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p219.

"너희들 일주일만 밤새면 배고파 죽어가는 사람 열 명 살릴 수 있어"

"그런데 너희가 그 사람들 살리자고 일주일간 밤샐 수 있을 것 같아?"

"열 명이 아니라 백 명 죽어도 밤 안 새. 그런데 너희가 일주일 밤새면 너희 아들 나이키 한 켤레 사줄 수 있어. 그럼 새는 거야. 알았어? 인간이란 이기적 존재란 말이야. 너희 아들 나이키 신발 한 켤레가 다른 사람 목숨 열 개보다 훨씬 중요해. 공산주의란 그걸 부정하고 만들어진 거야. 본능에 어긋나는 헛소리라 이론은 근사해도 실제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어. 불가능한 걸 실현하려 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독재와 억압이야. 알아들었으면 헛소리 그만 듣고 집으로들 가시오!"





 이론은 근사해도 실제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그 불가능함을 실현시키려 애쓰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독재와 억압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는 것. ─ 이 간단한 문장 속에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함축되어 있지 않은가?



 솔직히, 그 옛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처음 접했을 때만큼의 긴박감과 짜릿함과 두근거림은 많이 희석되어 버렸지만, 그 향수 만으로도 충분히 읽어지는, 딱 김진명의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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