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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Nov 21. 2017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녹턴》 ㅡ 가즈오 이시구로







 나는 늘 그렇다. 핫이슈가 되고 있는 베스트셀러는 늘 피해다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시기에는' 피해다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거룩하고 명예로운 이름으로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가즈오 이시구로. 나에게 그는 역시 적어도 이 시기만큼은 피하게 되는 소설가임에 틀림없었다. 그런 나의 일반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 그 모든 경향성과 일상성을 벗어나게도 ─ 나는 그의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역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집어 들 수 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애매하게 남아있는 자투리 시간에 계획없이 들렀던 서점에서, 나는 당장 읽지는 않더라도 한번 보기라도 볼까,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슥 훑어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아직 나에겐 '그 시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을 읽지 않고는 못 베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그의 대표작인 <남아있는 나날들>과 같은 책이 아닌 <녹턴>이라는 책에 먼저 손이 갔던 것은, 역시 나의 고집이자 취향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시점이 지나면
인간은 자기 삶에 책임을 져야 해.





 이 소설은 부제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듯이, 다섯 소설의 모음집이다. 그리고 그 소설에는 모두 음악이 흐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다섯소설은 너무 쉽게 읽힌다. 단조롭고 어떨때는 뻔하고, 어떨때는 너무 이상해서 머리를 갸우뚱. 그러는 사이에 뚝, 다 읽어 버리고 만다.




 나 역시 그랬다. 5개의 단편소설을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그 밋밋한 느낌이 다소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수려하고 화려한 문장으로 나를 미혹시키지도 않았고, 긴박감 넘치는 플롯으로 나를 진땀빼게 하지도 않았다. ─ 역시 밋밋한 느낌.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말하고자 하는 스토리 속에서 군더더기 없는 매끄러운 느낌. 숨을 헐떡이며 달리는 기분도, 눈시울이 붉혀지며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도, 그런 류의 짜릿함과는 거리가 먼 느낌.



 그런데 이상하게 매력이 있었다. 다섯 개의 모든 소설들이. ─ 그리고 그것이 가즈오 이시구로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작위적이지 않게 담담하게. 사람사이의 미묘한 심리를 파고들면서도 너무나도 담담하게 그려내서, 독자도 자기도 모르게 넘어가버리고 마는, 그런 종류의 매력이 있었다. <녹턴>이라는 미명하에, 음악이 엄청 비중있게 자리할 것 같으면서도 절대 그것이 도드라져보이지 않도록 하는 치밀함. 음악에 사람이 묻히는 법도 없이, 사람에 음악이 묻히는 법도 없이. 그 둘이 한 데 어우러져 그렇게 맨들맨들─.



 아주 재미있는 소설, 아주 문체가 아름다운 소설, 그런 류의 소설을 찾는 독자에겐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그런 관점에서 절대 읽지 말기를 바란다. 이름모를 동네에 들렀다가 우연히 들어간 작은 가게, 그 가게의 주인장이 무심하게 내어 놓는데도 하나하나에서 대가의 손맛이 느껴지는, 그런 가정식 요리마냥, 가즈오 이시구로의 담담함과 무심함에 곧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니까. 그리고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인간군상들의 심리와 인간사이의 미묘한 관계의 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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