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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Oct 17. 2017

힘들 때일수록 긍정하는 방법

《막다른 골목의 추억》 ㅡ 요시모토 바나나





돌아갈 집이 있는데도,
사랑받고 있는데도 외로운 게,
그게 젊음인지도 모르지




 요시모토 바나나. 한국인들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본작가. 그녀의 책이 베스트셀러이긴 하지만 그녀의 소설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녀의 대표작인 <키친>을 읽고도, 나는 오가와 이토의 <달팽이 식당>이 더 좋아, 라며 그저 한번 읽어봤음 족하다는 감상뿐이었다. ─ 이런 비슷한 감상을 갖는 일본작가로 에쿠니 가오리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다.



 그런 내가 참 오랜만에 그녀의 책을 집었다. 솔직히 책 표지 일러스트에 눈길이 갔다는 1차원적인 이유를 부인하지 않겠다. 그렇게 집어든 이 책은, 아 이래서 요시모토 바나나인걸까, 라는 산뜻하고 깔끔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이 책의 표지처럼.





난 따스한 쪽을 소중하게 여길 테야.
이런 교묘한 잔꾀를 제대로 간파할 줄 아는 남자를 찾을거야.
반드시 있을테니까.





 이 책의 제목 <막다른 골목의 추억>은 이 책에 있는 몇가지 단편 소설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 몇가지 단편 소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소설 역시 <막다른 골목의 추억>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막다른 골목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한 데 엮인 몇가지 단편소설 모두가 각각의 '막다른 골목'과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과 추억, 그리고 그 상황을 극복해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할수도 있을 것 같다.




 가업을 잇는다는, 모든 것이 정해져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젊은이답고 젊은이만의 고민과 그 극복의 과정. 어느 날 사내식당에서 독이 든 음식을 먹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 괴로워하면서도 사실은 그 괴로움이 자기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고찰하고 이를 받아들여서 더 나은 자기자신이 되는 거름이 되는 과정. 어린시절, 가장 마음으로 통했던 소꿉친구의 갑작스런 죽음과 그 죽음을 집어삼킨 듯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고찰. 오랜 연애 후 약혼까지 한 남자친구로부터 가장 비참하게 차인 후 스스로의 삶을 재정비해 나가는 과정.



 이 모든 이야기들은 어딘지 모르게 갑갑하고 막다른 곳에 놓여져 있는 상황은 아닐까. 왜 이런 불행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억울한 마음도 들고 어딘가 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누군가에게 위로도 받고 싶으면서도 사실은 누구에게 위로받는게 때로는 비참한 기분을 동반하는 상황. 이 모든 상황에서, 요시모토 바나나는 어떻게 그 상황을 긍정하고 다시 일어나 살아나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p211.

이번 일은 잘된 건지도 몰라. 나 따위가 느끼는 것은 포근한 구름 위에서 가느다란 구멍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아래인지 아닌지도 이제는 모르겠어. 그래도 나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게 중요해.




 지금 나의 상황이 '바닥' 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한번도 내려온 적 없는 세상의 가장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절망감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요시모토 바나나는 니시하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 할, 우리가 당한다면 그 자리에서 무너져버리고 말 그런 상황을 견뎌내는 사람도 어딘가는 있다고.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부모님이 쳐놓은 애정의 실타래에 매달려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보호받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고.



 그런 생각이 들면, 아 ─ 지금 나는 바닥이라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포근한 구름에 감싸여서 살짝 아래를 들여다 보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그런 느낌이 든다. 아직도 나는 보호받고 있고, 아직도 나는 살아갈 힘이 있는 존재라는 것. 그렇게 아래에 내던져진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차라리 잘 된 일이라는 것. 그렇게 자기자신의 마음을 다잡아 현실을 분명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마음 속은 얼마든지, 한없이 넓어질 수 있는데.
사람의 마음 속에 어떤 보물이 잠자고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아.






 현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이러한 상황을 긍정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내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느끼는 절망감 다음에 오는 설렘과 희망.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누가 선물처럼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힘든 일과 고통과 고독과 불행에 더 노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막다른 골목의 벽을 보면서 주저앉아 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마음을 토닥이고 다시 재정비해서 뒤돌아 앞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행복이 있는 것은 아닐까.













p127.

이 세상에서, 그렇게 만났기 때문에 나와 그 사람들 관계는 도저히 원만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멀리 있는 깊고 깊은 세계, 어느 맑은 물가에서 우리는 미소를 주고받으며 다만 서로에게 다정다감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꼭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p146.

아, 이게 오래 계속된다는 것의 의미로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믿음직스럽기만 한 것도, 강인한 것만도 아니다. 언젠가 거기에 있던 강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켜 없었던 일인 것처럼 하고는 쑥쑥 앞으로 나아간다.



p148.

"마코토, 왜 불빛은 따뜻한 느낌이 들까. 밤의 불빛은."

"그건 집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 속 빛이 밖으로 비치니까, 그래서 밝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거 아닐까."




p177.

'지금밖에 없잖아. 지금에서 눈을 돌리면 슬퍼질 거야.'하고서 절박하게 보내는 요즘의 나날은 어째서인지, 아니 그래서 더욱 기묘하게 행복했다.



p202.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무기로 삼아야지. 이미 갖고 있는 거니까. 너는 돌아가서, 또 언젠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행복하게 결혼하고, 어머니 아버지와 틈틈이 교류도 하고, 여동생과도 사이좋게 지내면서, 네가 있는 자리에서 큰 원을 만들어 나가면 되는 거야. 너에게는 그럴 힘이 있고 그게 너의 인생이니까. 누구에게도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p203.

우린 그나마 행복하고 편안한 거야. 그렇지만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p206.

지금은 이렇게 그냥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해파리처럼 흐물흐물 물에 떠다니며,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어 가는 투명한 하늘의 빛깔 속에서, 이 도시에서는 익명의 존재인 나로.




p211.

자신이 파악하고 싶어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세계인 것이다.



p212.

평화에 젖어 아픔에 둔해졌던 마음의 껍질 한 겹이 호르르 벗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아프기는 아프지만, 멍한 채로 살아갈 때보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훨씬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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