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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Jan 03. 2018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남아 있는 나날》 ㅡ 가즈오 이시구로







말해보세요, 스티븐스씨.
당신은 왜, 왜, 왜 항상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살아야 하죠?




 노벨문학상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읽고 싶다'는 욕구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보통 그 시기가 1년 쯤 지나고 나서야 읽어보고 싶어져서는, 그제서야 뉘엿뉘엿 책장을 넘겨보곤 하는 것이 내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즈오 이시구로. 솔직히 내가 문학적인 소양이 깊어서 그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점에서 슥 넘겨본 그의 책 몇 권 만으로 "아─ 읽고 싶다"라는 강한 충동을 느끼고 말았다. 그래서 단숨에 그의 책 세 권을 집어오게 되었고, 이 책은 그 중 두번째 책이다.





p293.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던가.'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지인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 그 당시 나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녹턴>을 읽고 있었다 ─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을 읽고 있다고 하니, 그가 말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은 조금 어렵다던데요'. 그 때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처음 접한 <녹턴>이라는 단편집은 그렇게 '어렵다'는 단어로 표현할 내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조금 '특이한 관점이다'라는 생각은 들었었지만. 하지만 이 <남아 있는 나날>이라는 책을 집어들고 몇 장을 읽어나가다보니, 그 때 그 지인의 말이 귀에 계속 맴돌았다. 



 ─ 어렵다. 어쩌면 이 책도 '어렵다'는 것과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 무슨 소리야, 라고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되는 상황이랄까. 한참을 그랬다. 보통 도입부분 일부만 그러다가 금방 몰입이 되고는 하는데, 이 소설은 한참을 고개를 갸우뚱. 중후반을 넘어가면서도 계속 갸우뚱. 갸우뚱. 그렇게 몇 번을 갸우뚱 거리면서 읽어나가다가, 불현듯 마지막으로 넘어가면서 모든 것이 이해되고마는 소설. ─ 아, 이런 유의 소설은 처음이다.



무슨 1인 다큐멘터리 마냥, 주인공은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기만 한다. 독자는 시대적 배경도 낯설고 직업도 낯선 이 스티븐슨의 독백 비슷한 이야기를 그저 듣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슨 소리야, 하면서 끊임없이 갸우뚱 하면서. 그리고 거기에 엎친데 덮친격, 지나치게 자기자신을 보호하려는 껍질이 더욱 독자와 화자의 거리를 멀게 느껴지게끔 한다. ─ 그렇다. 화자 스티븐슨은 과거의 자신을 이야기하면서 끊임없이 합리화를 하고 정당화를 하고 그리하여 '그럴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타당'했으며 그리하여 자기자신은 '후회없는' 완벽함을 추구하였음을 역설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지나친 합리화의 이면에는 사실은 그것에 대한 다른 관점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을. 어쩌면 화자인 스티븐슨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 역시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렇게 긴긴 장편으로 자기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일지도. 알면서도 애써 못본척 하고 있는 것일 뿐일지도.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마지막까지 본질을 꿰뚫어보기보단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를 답습하려는 스티븐슨을 보게 되지만, 우리는 그의 남아있는 시간들이 과연 그렇게 흘러가기만 할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 어떤 믿음과 가치관으로 자기자신을 몰아 붙였든,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지금부터"니까. 그리하여 노인이 말하지 않는가.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 . 



 현실 속에서 자기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아등바등 살아 나가고 있는 동안에는 모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독자인 우리들도 모순 속에서 잘못된 가치관에 휘둘린 채 그것을 좇으며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나치의 이념을 맹목적으로 수용하여 그 지침대로 '따를 뿐'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들에게는 어떤 잘못이 있었는가. 우리는 그 죄를 그들에게 물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이 책은 어느 집사의 회고록에서 시작되지만, 이 책을 덮고 나면 '나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는 소설이다.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기만의 시야에 갇혀 자기합리화 뿐인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금더 다른 길을 택할 수는 없는가. 다른 길을 가기엔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까도 언급했지만, 이 소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해답도 내놓고 있다.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니까. 어떤 순간도 '늦은' 때는 없다는 것을.












p294.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 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p299.

만날 그렇게 뒤만 돌아보아선 안 됩니다. 우울해지게 마련이거든요.




p300.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의 중심축에서 우리의 봉사를 받는 저 위대한 신사들의 손에 운명을 맡길 뿐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내 인생이 택했던 길을 두고 왜 이렇게 했던가 못했던가 끙끙대고 속을 태운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여러분이나 나 같은 사람들은 진실되고 가치있는 일에 작으나마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 그 야망을 추구하는 데 인생의 많은 부분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만으로도 긍지와 만족을 느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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