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플보다 된장찌개

트러플보다 된장찌개

by 재미나이




이미지 속 영어
Where shall we dine tomorrow, Jamini?
재미나이씨, 우리 내일 어디서 근사한 식사륽 할까요?
일반적으로 dine 이라고 하면 eat dinner 보다 격식 있고 좋은 곳에 가서 먹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 음식 좋아하세요?"

"네? 아네...."

그는 만날 때마다 내게 뭘 좋아하냐,

뭘 먹고 싶냐고 물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번쩍이는 마세라티가 등장했고, 곧장 그가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저는 사업을... 그러니까 화장품 유통업을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작은 중소기업에서 영업사원으로 시작했죠." 그는 손을 들어 와인 리스트를 주문하며 말을 이어갔다.

"어떤 와인 좋아하세요? 저는 평소에는 까베르네 소비뇽을 즐겨요. 기분이 좋거나 특별한 날에는 부르고뉴 피노 누아도 좋죠. 느끼한 음식을 먹을 때는 쇼비뇽 블랑을 먹고요. 고기에는 쉬라를 추천해요."

와인은 늘 남이 주는 대로 받아 마셔봤지만 직접 고른 적은 없었다. 한때 와인 동호회도 나갔지만, 결국은 동호회의 가면을 쓴 소개팅 파티라는 것을 깨닫고 두 번 만에 접었다.

"저는... 아무거나요."

"다음에는 이탈리안 먹어요."

뭐야? 내가 네 맛집 투어 파트너야?

나는 새끼손가락만큼 나온 이상한 이름의 프랑스 전채 요리를 썰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 주방장이 미슐랭 4 스타 출신인데 내가... 아, 매니저! Hello! I brought my date tonight!"

갑자기 등장한 파란 눈의 이국적인 매니저.

"Lovely! Miss, what can I get for you tonight?"

진한 프랑스 억양으로 따뜻하게 미소 짓는 매니저의 모습에 잠시 당황한 나를 보며 그는 말했다.

"재미나이씨가 나 영어 좀 가르쳐주면 좋겠어요."

내가 네 과외 선생님이냐? 아니야, 시니컬하지 말자.

장점을 보자. 그는 미식가이고, 자산이 있고,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아니, 하지만 내가 네 과외 선생님도 아닌데? 이 관계에 '영어 과외'라는 새로운 조건이 추가되는 건가?

"다음엔 이탈리안 다음엔 스패니쉬 어때요? 내가 페어링 할 와인을..."

미식남은 줄줄 그의 맛집 리스트를 부르며 나를 미식의 세계로 초대했다.

"트러플 알죠? 이건 진짜 아는 사람만 먹는 건데..."

그와 데이트하며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이 있었다.

나는 프랑스 코스 요리를 먹고 꼭 된장찌개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날 저녁 집에 돌아와 된장찌개와 열무김치를 비벼 먹으며 나는 그의 번호를 삭제했다.

그날의 나는, 미슐랭 4스타 셰프의 프랑스 요리보다, 냄비에서 갓 퍼 올린 따끈한 된장찌개와 열무김치의 투박한 위로를 더 간절히 원했다. 어쩌면 삶이란, 수많은 허울 속에서 진짜 나의 미각과 영혼이 반응하는 순간을 찾아내는 여정일지도 몰랐다.


"매니저님, 저 다음이요."


삶은 끊임없이 '최고의 경험'이라는 메뉴판을 내밀고, 관계의 '이용 약관'은 늘 최상의 스펙과 조건을 요구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연출된 식탁 위에서, 나는 가장 평범한 것을 갈망했다. 어쩌면 진짜 만족은, 내가 얼마나 비싼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이 반응하는 가장 소박하고 나다운 것을 지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연 어떤 '이용 약관'에 서명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 당신이 가장 지키고 싶은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요?



월, 수, 금,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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