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수치로 측정하는 시대에 감정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Ep7. 사랑을 수치로 측정하는 시대에 감정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by 재미나이

사랑을 수치로 측정하는 시대에 감정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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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속 영어

So, how compatible are we?”

그래서, 우리 조건이 얼마나 일치한다고요?

So, with this ring, can’t we raise it to 93%?

이 반지로 93%까지 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약속 장소는 서울에서 제일 비싼 스카이라운지였다.

내 시간은 20분째 공회전 중이었다. 남자는 오지 않았다.


기분이 상하는 건 당연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결혼정보회사 등급표에서 내 나이는 이미 위험 수위였으니까.

‘감정’은 나의 경쟁력이 아니었다.


사실 이 소개팅은 거절했어야 맞다.

무려 열다섯 살 연상이라니. 하지만 ‘횟수 차감 없는 미팅’이라는 미끼는 너무나 강력했다.

결정타는 매니저의 한마디였다.


“대표님 자산이 150억이세요.”


어이없는 웃음이 터졌다. “그런 분이 저를 왜요?” 내 질문에 매니저는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재미나이 님은 "어리"잖아요. 아, 제 말은, 그분에 비하면. 그리고 예쁘시고요.”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나는 그의 돈과 나의 젊음(과 미모)을 맞바꾸는 거래를 위해 이곳에 나왔구나.


한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여자의 나이를 '경쟁력'이라 부르는 세상에 온몸으로 저항하던 사람.

대학 시절,

나는 여학생회 소속으로 마이크를 잡고 여성의 연대를 외쳤다.

결혼 시장의 등급표 따위는 비웃어 주리라 다짐했었다.

그런 내가 지금, 나의 '어림'과 '예쁨'을 무기 삼아 거래에 나선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그토록 경멸하던 시스템에 기꺼이 투항하게 된 것은.


"이야, 듣던 대로 예쁘시네."

반사적으로 미소가 나왔다.

"과찬이세요." 속으로 숫자를 셌다.

이게 얼마 만에 듣는 칭찬이더라. 까마득했다.

"자, 이거. 우리 회사 화장품. 여자들한테 아주 인기 많아요. 쓰면 더 예뻐질 겁니다."

그는 마치 선심 쓰듯 커다란 선물 상자를 테이블 위로 밀었다.


"여러 세트니까 어머님도 갖다 드리고, 친구들한테도 좀 뿌려요."

그의 후함은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이만큼이나 주는 사람이니, 너는 감사해야 마땅하다'는 무언의 압박.

그가 쌓아 올린 선물 상자만큼, 내 자리의 공기도 무거워졌다.


"저는 사업하는 사람이라 빙빙 돌리는 건 딱 질색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죠."

마시던 물 잔을 내려놓았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랑 사귑시다. 오늘부터."

"컥..."

사레가 들려 기침을 뱉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잠깐의 정적 동안,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 이것이 바로 그 전설로만 듣던, 업계 최고 성혼율의 비밀이었구나. ‘시간은 돈이다’를 신봉하는 CEO 고객을 위한 ‘초고속 성혼 패키지’ 같은 건가.

그가 망설임 없이 내민 한마디—
“저랑 사귑시다. 오늘부터.”—는
‘시간은 돈이다’ 신봉자들의 최후 병기였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진짜 사랑은
‘초고속 패키지’가 아니라
‘천천히 쌓아 올리는 신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결국 이 여정의 목표는,
‘93% 매칭률’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내 마음에 진짜로 닿는 궁합을 찾는 것이 아닐까요.천천히, 조심스럽게,
말이 아닌 신뢰로 쌓아올리는
작지만 견고한 연결.그것이 600만 원짜리 숙제의
진짜 정답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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