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원짜리 사랑은 진짜일까?

Ep3.600만원짜리 사랑은 진짜일까?

by 재미나이



20250722_0803_결혼 정보회사 대기실_remix_01k0qkjvcfejrte2etvxkdw5mr.png



“재미나이 님, 어서 오세요~”

FM 라디오 DJ 같은 목소리의 매니저가, 이를 활짝 드러내며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고객 상담 필수템인 서류 파일, 그리고 차가운 계산기. 오늘 나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저 차가운 액정 위 숫자에 의해 냉정히 산정될 터였다.


“네, 안녕하세요…”

떨리는 목소리마저 무시한 채, 매니저는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을 시작했다.

마치 바코드라도 찍듯 정밀하게. “음~ 실물이 훨씬 예쁘시네요!

그런데 이런 인재가 왜 아직 솔로일까?”

“직업도 나쁘지 않고, 나이도 뭐… 아직 가능성은 있고, 학벌도 이 정도면 준수하고… 혹시, 부모님께 **‘리스크’**는 없으시죠?”

'리스크'라니. 나는 보험 상품인가? 사회생활에서 이런 면접을 봤다면 당장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사랑'을 사고파는 신성한 곳이었으니까.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여기서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이 게임에서 패배를 의미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경쾌하게 계산기 버튼을 눌러댔다.

내 스펙은 착착 점수로 매겨지고, 나는 투명한 쇼케이스 안의 전시품이 되었다.

'낭만적인 만남'을 꿈꿨던 과거의 나는, 그녀의 계산기 액정 위에서 처참하게 소멸했다.

아, 깨달음. '결혼을 결심했다'는 건, 내 마음의 준비가 아니라, 세상의 냉정한 잣대 앞에서 '스펙 검증'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구나.

"저희가 학력, 혼인 기록, 소득 수준까지 팩트 체크 들어갈 거고요.”

매니저는 잠시 감상에 젖은 듯 나를 바라보더니,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근데 연봉이… 음… 좀 **‘아쉽’**네요. 혼자 살기 버거우시겠어요.”

...야, 너나 잘하세요. 꾹 눌러 참았던 분노가 팝콘처럼 튀어나오려 했다.

각오는 했지만, 이 정도 '영혼 없는' 평가에는 내 멘탈도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Applicants will be categorized accordingly."

(지원자는 종류에 따라 분류됩니다)


그 문장은 마치 시스템의 냉정한 선언 같았다.

나는 결혼할 준비가 아니라, 애초에 평가받을 준비 자체가 안 되어 있었던 거다.

아니, 어쩌면 평가받을 준비를 할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할 테다.

“얼마짜리 원하세요?” 그 한마디에 내 모든 가치가 결정된다는 듯, 그녀의 손에서 계산기가 마치 무대 위 주인공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가 있으시니까, 400부터인 건 아시죠?” 탁. 탁. 탁. 플라스틱 부딪히는 소리가 내 머릿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숫자가 매겨지는 소리. 내 존재가 기호화되는 소리.

“제가 재미나이씨는 예쁘시니까, 서비스로 두 번 더 얹어드릴게요.

대신 이걸로 하시면 환불은 안 되고요. 그리고…” 말은 허공을 맴도는데, 나는 마치 빙의라도 된 듯 홀린 듯 카드를 내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600이라는 숫자가 찍힌 영수증만이 손에 들려 있었다.

600만원. 나의 사랑을 찾기 위한, 아니 나의 '상품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값이 이토록 비쌌던가.

붐비는 엘리베이터 안. 점심의 나른함을 즐기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벽에 부딪혔다.

“그랬다니까? 완전 그린라이트 아니야?”

“그런가? 야, 그나저나 저번에 그 원피스…”

나와는 상관없는 '낭만적 대화'의 세계. 나도 저들처럼 웃고 떠들던 때가 있었는데.

아주 오래된 필름도, 바로 어제 찍은 영상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의 기록 속에서 나는 나를 잃어버린 듯했다.


'시간, 참 훅 간다.'


엄마가 무심코 뱉었던 그 말이, 오늘따라 납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넘어, 내가 놓쳐버린 것들, 그리고 뒤늦게 마주한 현실의 무게였다.


그날 저녁, 설거지를 하던 엄마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엄마, 나 결혼정보회사 등록했어." 고무장갑 낀 손이 잠시 멈췄다.

등 뒤로 서늘한 정적이 흘렀다.

"돈이 남아도냐?"

엄마는 돌아보지도 않고 쏘아붙였다.

역시나. 다른 집 엄마들처럼

"어머, 우리 딸 드디어" 같은 반응은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그것은 이미 나만 없는 평행우주에서 살고 있는 이에게 던지는 무의미한 질문일 뿐이었다.



tempImagecdSU4j.heic



"그럼 남자를 소개해 주든가!"

"주변에 너 빼고 다 결혼했다!"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들렸다.

엄마의 '손주/사위 자랑' 레퍼토리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이젠 내가 외운다.

"엄마가 옛날에 그랬잖아. 결혼하면 여자만 손해라고—"

그제야 엄마가 허리에 손을 짚고 돌아섰다.

"그래서? 네가 내 말 때문에 결혼 안 한 거였어? 세상에, 네가 언제부터 엄마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그 말대로 했으면 벌써 애가 둘이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서야, 뜨거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서른여덟. 이 나이에 부리는 유치한 반항이라니. 나는 지금 사춘기를 앓고 있는 걸까.

어쩌면 이건 결혼 준비가 아니라, 세상의 냉정한 시선과 맞서기 위한 나만의 '정신무장 훈련'일지도 모른다. 모든 평가와 비난에 단단해지는 마음, 어쩌면 기대치를 현실화하는 과정.


'그래도, 올해는.' 나는 다시 한번, 나 자신과 약속했다. 손 안에서 차갑게 식어 있던 영수증을 꺼내 들었다.

600만 원. 이 숫자의 값어치가 헛되지 않기를.

이 금액이, 내 마지막 자존심이자, 허투루 보낸 시간에 대한 뒤늦은 보상이기를.

대단한 인연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세상의 계산기 앞에서도 기죽지 않을, 말이 통하는 사람.


600만 원이라는 확실한 비용을 지불한 서비스와,
‘공짜’라는 말로 유혹하지만 결국 다른 방식으로 비용을 청구하는 세상.
사실 우리는 매일, 보이지 않는 가격표 앞에 서 있습니다.
자존감이, 시간이, 기회가 그 숨겨진 대가가 되어 우리를 조용히 짓누르죠.
결국 모든 선택의 끝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이번엔, 뭘 얻고 또 뭘 잃었을까?”
그 질문이야말로, 어쩌면 성장이 시작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화 예고합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600만 원짜리 투자 앞에서, 이메일로 도착한 남자들의 프로필은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숫자로 번쩍였다. 과연 그 '다른 차원의 남자들' 속에서 나의 사랑 계산기는 어떤 답을 내릴까? 다음 만남은 재무설계 세션이 아닌, 진짜 '관계'를 찾기 위한 여정이 될 수 있을까?"

월, 수, 금, 토 연재
이전 01화그녀는 조건을 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