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이 오디션일지라도
주말에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의미 없이 채널을 빙빙 돌리며 리모콘 버튼을 누르는 일을 좋아한다. 요즘에는 딱히 볼 게 없네, 그럼 겸사겸사 라면이나 끓여 먹어볼까 라고 혼잣말하는 주말만큼 여유 있는 주말이 또 있을까.
지난주 일요일에도 어김없이 소파에 누워 <라디오 스타> 재방송을 보며 낄낄대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배두나의 말에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같이 출연한 패널로부터 ‘선배님처럼 유명한 스타는 오디션 같은 것을 볼 리가 없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답했다.
“나 또한 수없이 오디션을 본다. 오디션은 일상이고 떨어지는 것도 다반사이다. 매일 떨어진다.”
오디션에 매일같이 떨어진다는 배두나의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여러 차례 치렀던 면접을 떠올렸다. 나는 늘 손을 덜덜 떨면서 울상으로 면접장 문을 열고 나오는 프로탈락러였기 때문이다.
면접관의 날카로운 질문과 혹독한 평가를 듣고는 소금에 숨이 죽은 절인 배추잎처럼 주눅이 들어 몇 날 며칠을 착잡한 심정으로 보냈던 날들.
분명 여러 번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장에서는 머릿속이 하얘져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아무 말이나 두서없이 내뱉었고, “당신은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거절의 말에 상처를 받았던 순간들.
하필이면 따뜻한 봄날에 생애 최악의 면접을 보고 나와서는 하루 종일 속상해한 적도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저 사람들은 굳이 상처 주는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처음엔 내 탓으로 시작해 마지막엔 면접관 탓으로 돌렸다. 나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너네가 잘못이라 생각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했으니까.
하지만 매일 떨어진다. 배우 경력 20년차도 오디션에서 떨어지는 게 다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갑자기 안심이 된다. 앞으로 몇 십 년간 셀 수 없이 면접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그런 거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솔직히 이왕이면 실수 없이 뭐든 잘하고 싶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거나 어떠한 경험도 곧 나의 자산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떨어지지 않는 게 덜 힘들고 덜 상처받으니까. 그래도 나는 앞으로 면접이든 중요한 미팅이든 간에 늘 배두나를 떠올릴 것이다. 요게 포인트!
* 추신: 이러한 저라도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터득한 면접 성공의 기술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끝도 없는 당당함’과 ‘순발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순발력을 가지려면 아무래도 다시 태어나는 게 빠를 것 같아, 그 대신에 밑도 끝도 없는 당당함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내가 호락호락하게 탈락할 듯싶으냐, 어디 한번 해보시지!’ 하면서 면접관과 눈싸움을 하다가 기세등등하게 떨어지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