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세 달 전쯤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충동적으로 로또 삼천 원어치를 샀다. 가끔 복권방 앞에서 젊은 사람 늙은 사람 할 것 없이 머리를 맞대고 사인펜으로 45개의 숫자 중에 어떤 수에 색을 칠할지 고민하는 장면은 재밌으면서도 어쩐지 서늘하다.
한때 나는 젊고 늙고 간에 매주 로또를 사는 일은 너무 서글프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물론 그런 나도 이제는 종종 복권을 산다. 복권을 사면서 알게 된 좋은 점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단돈 천 원으로 일주일 안에 내가 일확천금 부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 것, 두 번째는 천 원 중 410원이 소외계층을 돕는 데 쓰인다는 것. 물론 그 희망은 일주일이 채 가지 못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이 리셋되지만 그 정도면 괜찮다.
천 원에 일주일짜리 희망이면 남는 장사인 게 분명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료타 상도 복권을 산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료타 상의 일상에는 이혼한 아내와 어린 아들 그리고 늙은 어머니가 있다. 각자 나름대로의 초라한 사정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처럼. 꿈이든 돈이든 뭐든 간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처럼.
아주 큰 태풍이 불어 온 동네에 바람소리만 들리던 영화 속 장면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료타와 아내, 어린 아들이 비바람을 피해 놀이터에 몸을 숨겼던 그날 료타 상이 산 복권도 태풍에 젖어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극장 안의 사람들 몇몇은 웃었다. 나는 웃기기도 하고 울적해지기도 하는 복잡한 마음이 되어 버렸다. 태풍이 지나가면 뭐가 달라질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아 역시 복권을 사도 달라질 일은 없겠지!'
나는 속으로 외치면서 또 로또를 하겠지.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희망도 절망도 없다.’는 실로 훌륭한 표현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쓴다고 했고, 나는 아무래도 희망도 절망도 없이 로또를 조금씩 사야 할 것 같다.
* 참,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산 복권은 5천 원짜리에 당첨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