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언제든 빌려줄게요; 우리들의 월경권
애써 갚지 않아도 되는 대출이 있다. 바로 생리대. 화장실 문을 쾅 닫고 나오며 “헐, 나 생리해!”(대부분 이 대사 뒤에는 두 글자짜리 욕이 항상 따라 붙는다)라고 외치면 문 앞에 서 있던 친구들로부터 반사적으로 돌아오는 대답은 두 가지였다. “생리대 빌려줘?” 혹은 “나 진통제 있어!”
생리대를 빌려 쓰고 난 뒤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고 있으면 생리대는 이게 무해하다더라 진통제는 내가 다 먹어 봐서 아는데 얘네 것이 부작용이 덜하더라, 는 식의 이야기가 한바탕 오간다. 이런 정보들은 어떤 어른들의 “내가 해 봐서 아는데”보다도 강력하다. ‘해 봐서 아는 것’들이 누군가에게 조언이 되기 위한 조건은 아무래도 이런 거 아닐까?
정말이지 이런 악의 없는 대화가 너무 좋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의 피땀눈물이 담긴 정보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성급히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빠르게 적기 시작한다. 어떨 땐 몇 줄짜리 뉴스 기사보다 몇 배는 더 정확한 세계.
병아리, 거북이, 금붕어, 장수풍뎅이 그리고 온갖 식물들. 어릴 때 나와 동생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녀석들이다. ‘자고로 아이들은 잘 읽고 잘 만져야 좋은 어른으로 자란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엄마는 우리에게 책을 읽어주고 날마다 공원에 데려가 주었다. 햇빛이 짱짱한 날에는 땀에 젖을 정도로 잔디밭을 뛰어다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옷이 더러워지든 말든 상관없이 진흙 위에서 뒹굴었다.
동생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에는 우리 집에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새하얀 토끼 위에 손을 살짝 올리면 쌔근쌔근 숨을 쉬는 게 느껴지는 이 작고 따뜻한 생명체가 너무 좋았다. 토끼한테 갖다 준다며 하굣길에는 학교 운동장 구석의 온갖 풀을 뜯었다. 동생 손을 잡고 풀 뜯으면서 “이제부터 토끼가 내 동생이야. 넌 내 동생 아니야.”라는 말에 집에 도착할 때까지 동생은 엉엉 울었다.
새하얀 토끼는 쑥쑥 자랐다.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몇 번의 털갈이가 지나고 나니 덩치도 제법 커졌다. 여느 때처럼 동생과 나는 토끼를 데리고 나가 산책한 뒤 집에 돌아온 날, 토끼가 지나간 자리마다 새빨간 피가 묻어 있었다. 핏덩어리는 토끼 소변과 함께 거실 바닥 군데군데 들러붙어 있었다. 토끼를 우리 집에 분양해 준 앞집 아주머니가 찾아와 녀석이 생리를 시작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가족은 “아, 그렇구나. 토끼도 생리를 하는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집 아주머니는 토끼 등을 쓰다듬으며 한 마디 내뱉었다.
“암컷은 이래서 키우면 안 돼.”
얼마 지나지 않아 그저 건강하기만 했던 우리 집 토끼는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떠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토끼는 생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혈뇨를 했던 걸 보니 어디가 아팠던 모양이다. 며칠을 울었다.
한 달에 닷새씩 나의 몸은 혈투를 벌인다.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이 혈투의 역사는 19년 전에 시작돼 앞으로 20년은 더 지속될 것 같다. 이 정도 경력이면 20년 차 베테랑인데. 피로 맺어진 나와 나의 팽팽한 대결이 여전히 쉽지 않다.
생리통 때문에 아랫배를 부여잡고 몸부림치고 있을 때면 아직도 가끔씩 귓가에 맴도는 말. 암컷은 이래서 키우면 안 돼. 생리한다는 사실만으로 암컷은 키우면 안 된다는 말이 과연 토끼에게만 적용되어 왔을까?
“누군 생리를 하고 싶어서 하냐?”
“야, 그리고 생리하는 거 쉬쉬하는 것도 솔직히 웃기지 않냐. 심지어 여자들끼리도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하고 ‘그날’, ‘마법의 날’이라고 하잖아.”
“맞아. 예전에는 슈퍼에서 생리대 사면 꼭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줬잖아. 남한테 들키면 안 된다는 듯이.”
“우리 엄마 젊을 땐 버스에서 친구들이랑 떠들고 있으니까 어떤 할아버지가 ‘기저귀 찬 여자가 어디서 아침부터 큰 소리를 내?’ 하면서 버럭 소리 지른 적도 있대.”
“미쳤네. 안 그래도 생리할 때마다 고통스러워 죽겠는데. 생리대는 비싸지, 생리휴가 쓸라치면 생리하는 걸 증명해보라고 하지. 대체 왜들 그래?”
지난달에 전시회를 보기 위해 서울역사박물관에 갔다. 박물관 내 화장실에 잠깐 들렀다가 나는 그만 기함을 하고 말았다. 생리가 시작된 것이었다. 패닉이 되어 가방을 뒤져보았지만 비상용 생리대를 며칠 전 직장동료에게 빌려줬단 사실만 깨달았다. ‘주변에 가까운 편의점도 없던데 어떡하나’ 하고 있는데 웬걸 화장실 입구에 배치되어 있는 비상용 생리대 지급기를 발견했다.
사용법을 읽어보니, 안내데스크에 있는 코인을 가져와 투입구에 넣으면 비상용 생리대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안내데스크에서 받은 코인을 기계에 넣으니 생리대 하나가 데구르르 나왔다.
아아! 이렇게 감동일 수가!
I SEOUL YOU라는 괴랄한 캐치프레이즈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다. (네네, 저도 아이서울유 합니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 적재적소에 쓰이면 애국심은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높아진다.
2016년 미국 최초로 뉴욕시는 공립학교, 교도소, 쉼터 등에서 무상 생리대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리고 2019년 서울 한복판에서 예상치 못한 날짜에 피를 흘리게 된 나는 서울시에서 제공한 비상용 생리대 하나를 빌려 쓰게 되었다.
흑백논리처럼 남자와 여자를 반으로 갈라 소리 높여 대립하는 싸움의 양상을 자주 목격한다. 하지만 지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시끄럽게 목소리를 내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소리 내지 않고, 싸우지 않으면, 모른다. 서로를 잘 몰라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다가 결국 썩어 문드러지는 관계는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주변에 많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싶다.
생리대를 빌리고 빌려주는 마음. 임산부나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마음. 플라스틱 대신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사용하는 마음. 리벤지 포르노 규제 및 처벌뿐만 아니라 카카오톡으로 불법 촬영물을 공유하는 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알리고자 하는 마음. 동등한 기회를 꿈꾸는 마음.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마음을 넘어,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헤아리게 되는 선한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나아진다. 반드시.
우리가 잘 몰랐다는 이유로, 작고 새하얬던 토끼는 죽었지만
우리는 잘 알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토끼처럼 죽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피 흘리는 암컷은 자란다.
앞으로도 나는 다른 이들에게 생리대를 잘 빌리고 잘 빌려주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세계를 더 잘 알고자 하는 마음도 잘 빌리고 잘 빌려줄 것이다.
* 생리대는 503이라도 빌려줄 수 있다는 말에 물개 박수 치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다.
*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우리나라 노숙자 여성을 위한 생리대 지원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그리고 나는 오늘 생리를 시작했다. 으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