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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드롱 Sep 09. 2023

너 자신을 알라는 말씀

가끔은 좀 몰라도 되지 않을까요?



"얘, 나 프로필 사진 좀 찍어줄 수 있니...?"

엄마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전화를 받자마자 나는 알았다. 뭔 일인지 속이 상한 목소리다. 이유는 98%의 확률로 아빠 때문일 것이다. 그래요. 그까짓 거 사진 찍고 좀 보정해서 주는 건 어렵지 않다. 요샌 간단한 프로필 사진쯤은 핸드폰 카메라로 충분하다. 굳이 크고 무거운 DSLR이 필요 없어졌다.

프로필 사진이야 다들 그러듯이 사진관에서 찍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우리 엄마 아빠가 까다롭다는 거다. 둘 다 취향이 고상해서 너무 평범하거나 작위적인 사진은 싫고, 그렇다고 너무 날것이어도 안 되는, 나이에 맞게 무르익은 자연스러운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내면의 정신을 드러내야 한다. 요약하면, 현실과 이상을 적절히 반영하는 찰나의 지점에서 셔터를 눌러야 하는 고 난이도의 작업인 것이다. 당연히 그런 통찰과 심미안을 가진 작가를 섭외하려면 비싸다. 그래서 결국 만만한 나한테 의뢰가 오리라는 것을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거기다 딸의 서비스는 공짜니까. 다만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아빠가 서로 이렇게 저렇게 맞춰보고 싸우다가 마지막 순간에 나에게 전화를 하는 때를.


내가 일부러 먼저 찍어주겠다고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아내 인생 첫 책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줄 우선권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남편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그 남편은 화가다. 사진에도 조예가 깊은 그는 최근에 비싼 렌즈도 구비하였다. 당연히 최고로 멋있게 찍어주리라고 장담을 하셨다.

세 번째, 엄마가 기대치가 많이 낮아진 상태에서 의뢰를 받아야 쉽고 빠르게 컨펌이 난다.


엄마는 딱히 말씀은 안 하셨지만 내가 독심술로 읽은 주문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나이에 맞게 자연스럽게

두 번째, 그렇다고 너무 불쌍해(?) 보이지 않게

세 번째, 화나보이 거나 슬퍼 보이지 않게

네 번째, 그렇다고 가벼워 보이지 않게

다섯 번째, 세련되고 뭔가 그럴싸한 작가의 아우라가 느껴지게


나는 햇빛 좋은 오전에 동네 신축 아파트로 갔다. 요즘 아파트는 벽면이 모던한 대리석이라 배경으로 손색이 없다. 그리고 엄마를 세워놓고 최대한 주름이 안 나오게 빠르게 찍었다. 그리고 그동안 갈고닦은 포토샵 솜씨로 슥슥 보정을 하고 끝. 속도로만 따지면 동네 오천 원짜리 여권사진 자판기에 버금가는 효율이었다. 나 스스로도 약간 자랑스러웠다.




엄마도 꽤 만족스러워하셨다. "앓던 이를 뺀 것 같구나."

그동안 얼마나 내가 맘고생을 했는지. 하며 시작된 하소연은 익히 내가 예상하던 대로였다.


"내가 고민 끝에 엊저녁에 내가 아빠더러 한번만 더 찍어달라고 했어. 그전에 찍어준 게 아무리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더니 이번엔 나보고 식탁에 앉아보라고 하대. 앞 뒤에다가 조명을 여러 개를 놓고, 삼각대 세우고, 나더러 책을 읽는 척 하래. 그래서 내가 그건 좀 작위적이지 않을까 했더니 이렇게 전문가의 말을 맨날 무시하냐고 어찌나 화를 내는지,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너무 윽박지르는 통에 속이 상해서 앉아 책 보는 시늉을 하고 있는데 나보고 웃으래. 근데 웃음이 나니? 속으론 울고 싶은데 억지로 웃느라 혼났다. 내가 무슨 프로 영화배우도 아니고. 그래서 여차저차 찍었는데 컴퓨터로 연결해서 딱 보니까 너무 이상한 거야. 아빠가 보기에도 별로였는지 잠시 아무 말 안 하더라. 그래서 내가 좀 맘에 안 든다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며, 주름을 모니터 가득 막 확대해 가지고 이게 당신이다. 응? 말이야, 자신을 알아야지! 현실을 직시해! 70세 넘은 할머니를 예쁘게 찍는 게 쉬운 줄 알아? 그러면서 아이고 얼마나 별소리를 다하는지 내가 다 기억도 못하겠지만 밤에 잠이 다 안 오고 가슴이 두근거려 혼났다.

아니, 이제 내 인생 마지막일지도 모를 첫 책에 나오는 사진이 내 맘에 안 들면 신발에 들어간 모래처럼 계속 마음에 거칠거릴 것인데. 70넘은 할머니는 사진도 찍지 말란 말이니? 그리고 꼭 다 그렇게까지 진실을 알 필요가 있니?"


진짜 아빠는 왜 그러신대.라고 나는 같이 맞장구를 쳤다.


매사에 돌려 말할 줄 모르는 나의 부모는 평생 일관된 태도로 솔직 담백한 말을 가차 없이 주고받으신다. 그렇게 꾸준하게 부부의 정을 나누신다. 누가 더 심하다고 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입밖에 내지 않는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엄마. 그거 알아요? 그래도 엄마를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게 찍어주고 싶었던 사람은 아빠였을 걸. 아내의 평생소원이던 작가 데뷔니까. 등단은 엄마의 꿈이기도 했지만 아빠가 엄마에게 약속했던 마음의 빚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가 최고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여자와 사진으로 찍혀 나온 주름 진 그녀는 아마 차이가 있었나봐. 사진은 원래 과장과 생략을 잘하거든. 어쩌면 그 순간 엄마만큼 당황하고 속상한 사람이 바로 아빠였을지도 몰라. 매일 경신되는 육체의 노화를 받아들이기 힘든 건 그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현실을 알아야 해라고 소리친 건 어쩜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을지 몰라.'

 

나에게 사진을 받고 엄마는 연신 고맙다고 했다. 진짜 마음에 드시나 보다. 참으로 그녀는 작은 일도 많이 생각하고 마음에 담는 섬세한 사람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얘, 이거 영정사진으로도 쓸 수 있을까?"라고 물어, 딸의 속을 뒤집어 놓는 솔직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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