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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드롱 Mar 30. 2022

꽃을 찍는 아저씨

예술이 뭐 별건가


그는 헐렁한 회색 양복에 크로스백을 매고 있었다. 흔한 아저씨였다.

난 그냥 지나쳤을 거다. 그가 좁은 하수도를 양 다리사이에 걸치고 위태롭게 꽃을 찍고 있지만 않았다면.


자세가 어찌나 불안하던지 곧 고꾸라질 것 같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오지 전문 사진가가 절벽에 매달린 희귀한 야생화를 찍고 있다면 모를까 그가 바라보는 것은 평범한 국화요, 선 곳은 구청에서 의욕 없이 만들어 놓은 비탈진 화단이었다.


그는 핸드폰 사진기로 가깝게 멀게 이렇게 저렇게 구도를 잡으며 혼자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마지막 해가 금색 빛을 뿜는 퇴근시간. 모두가 발걸음이 바빴으나 그의 주변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나도 걸음을 멈췄다. 세상 평범한 꽃 이파리를 진귀한 보물 대하듯 정성껏 담는 저 아저씨, 뭔가 나랑 찌찌뽕이네. 라고 생각했다. 뭔가 중요한 실마리라도 발견한 것일까? 예를 들면 삶의 비밀 같은 것이라도?



사실 이상하게도 아무도 우리에게 묻지 않는다. 중요한 문제인데 비해 정색하고 묻는 이는 없다. 자, 네가 세상에 온 이유가 뭔지. 답을 생각해서 오후 7시까지 제출하세요라고 하는 일은 더욱 없다.


대체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 답답해도 가르쳐주는 학교도 학원도 없다. 당연하지. 그런 질문들은 보이지도 않고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라니깐.


그런데도 어떤 어리숙한 사람들은 자꾸만 멈춰 서서 그 질문에 대답하려 한다. 뭔가 실마리가 있지나 않을까 귀를 기울이고 국화꽃이나 돌멩이를 유심히 쳐다본다. 나처럼.


들리는 건 그냥 참새가 날아가는 소리, 공사장 소음, 바퀴들이 도로를 짓밟는 소리, 텅 빈 마음속 메아리뿐인데. 그들은 도저히 그냥 앞만 보고 가지를 못한다. 자꾸 뭔가를 놓친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호주머니 속을 만지작거리며 구겨진 영수증을 뭉치고 손가락 끝 굳은살을 뜯는다. 숙제를 못한 아이처럼 초조하다. 한낮에도 문득 서늘하게 심장이 내려앉고 밤에는 가슴을 베개로 누르며 불안한 잠에 매달린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안정된 직장만으로는 편안하게 웃을 수 없다. 누군가는 아주 배가 불렀다고 하겠지만, 그들은 ‘자기만의 세상’을 가져야 한다.

그건  꼭 집 같다. 구멍 뚫린 종이상자같이 허술한 것부터 정밀하고 견고한 요새 같은 것까지 다양하다. 초라하든 화려하든 자기만의 세계의 틀을 만들어놓은 자들은 그제야 안도한다. 그 속에서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그걸 덕질이라고 부르든, 취미라고 부르든 상관없지만 나는 그 행태를 고상하게 ‘예술’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세상을 발견하는 눈, 그것을 핥고 맛보면서 태어날 수밖에 없는 탄성과 질문, 외마디 감탄사들. 그것이 불멸의 진리는 아니더라도, 심지어 개똥철학이라고 비웃음을 살지라도 그건 최소한 자신을 구원한다.

그것은 절박한 자기 위로다. 그래서 거짓 없는 예술은 때로 처절하고 종종 불편하고 어딘가 애잔히 기울어있다.


나는 집을 이루는 벽돌들 하나하나를 살피며 왜 그는 여기에 이것을 만들었나 하고 묻기를 좋아한다. 나그네처럼 조용히 탐정처럼 그의 불안을 읽는다. 왜 그 여자는 저런 소리로 노래하는가, 왜 그는 저런 화장을 했는가, 왜 저런 그림을 그리고 왜 그는 흑백사진을 찍어대는가. 그렇게 손끝으로 가만히 상상하며 벽돌을 만지다 보면 그가 나와 몹시 가까웠음을 알게 된다.


잠들기 전 문득 그 아저씨를 떠올린다. 그는 사진을 누구한테 보여줬을까? 꽃을 닮은 아내였을까, 애인이었을까?

어쩌면 단지, 꽃 같은 자기 마음을 위해서였을까.

마음,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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