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시험 날 지각하는 사람
그날은 컨디션이 좋았다. 그런데 젠장,
아무도 S대가 'S대 역' 앞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고3인 나는 숲이 우거진, 오르막을 즐거운 기분으로 한참을 걸어 올라가다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같이 올라가던 학생들이 점점 줄어드는데, 진작 보여야 할 교문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시험시간 15분 전이었다. 그날은 논술시험 보는 날이었다. 나는 길을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문과대가 어디냐고 물었다.
"아니, 문과대요? 여기 산을 넘어야 해요. 여기서 걸어갈 수 없어요!"
내 인생에서 곧잘 마주치는, 반갑지 않은 예감이 엄습했다. 아. 씨.. 망했다...
그때 길을 알려주신 아주머니가 터덜터덜 내려가는 나를 향해 뛰어오며 말했다.
"학생! 시험 보는 거죠? 저기, 경찰차로 가서 태워달라고 말해요! 빨리!"
아, 아직 끝나지 않았나... 나는 다리를 억지로 놀려 경찰차로 향했다. 그 와중에 뭐라고 했는지는 수치심 탓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경찰은 재빨리 나를 태우고 언덕을 넘었다. 아주머니 말씀대로 꽤 먼 거리였다.
그 당시 해마다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면, 신문 1면에 실리곤 하는 사진이 있었다. 바로 시험시간에 늦어서 극적으로 교문을 통과하는 학생의 모습이다. 왜 해마다 그 장면을 찍어 기사로 내보내는지 알 수 없다. 사진 속 학생은 있는 힘을 다해 뛴다. 인고의 시간과 땀방울이 지각 한 번으로 날아갈 뻔하는 그 장면은 무척 현장감이 넘치는 강렬한 사진임엔 틀림이 없다. 사진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어이구... 그래도 S대를 갈 정도면 아주 모자란 애는 아닐 텐데 어쩜 저렇게 중요한 날 쯧쯧. 전 국민이 혀를 찬다. 전국적 망신이 따로 없다. 나도 그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한심하고 안타깝네. 수험생이 저렇게 흐리멍덩한 정신이라니. 그리고 얼마나 쪽팔릴까...
그 주인공이 설마 내가 되리라는 상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교문에 다다랐다. 설마 설마 했던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내 인생에 그렇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경찰아저씨는 교문 앞에서 현격하게 속력을 늦추었다. 마치 사진들 맘껏 찍으세요. 바로 이 학생이 '올해의 정신 빠진 놈입니다.'라는 듯이. 기자들은 한 명씩 내가 탄 차의 앞유리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를 터뜨렸다. 팡 팡 팡 팡.... 과장 없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나는 레드카펫 위 배우가 아니었고 내리는 차는 리무진이 아니라는 거. 절로 고개가 아래로 처박혔다.
안돼.... 신문에 이렇게 나올 순 없어..! 새해 친척들 모인 자리에 웃음거리가 되고, 게다가 합격하지도 못하면 나는 그 쪽팔림을 감당할 수 없다.
사실 S대를 넘볼 정도로 내가 공부를 평소에 아주 잘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덜렁거리는 만큼 임기응변이 발달되어 수능을 잘 봤고, 미대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최상위권 대학을 노려볼 만했다. 그리하여 첨 가본 S대. 그렇게 혼쭐이 난 후 나는 더 이상의 실수는 없을 거라 믿었다. 그래야만 했고, 그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사건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곧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