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 일도 없던 날 무너졌다
나는 내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늘 괜찮은 척을 잘했다.
힘들어도 티를 내지 않았고, 어떻게든 버티는 편이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꽤 단단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어느 날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누가 나를 크게 상처 준 것도 아니었다.
삶이 갑자기 무너질 만큼 큰 사건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다.
그런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은 어떤 거대한 사건 때문에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부분의 무너짐은 조용하다.
책임감이 조금씩 쌓이고
괜찮은 척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쉬어야 할 순간을 몇 번 지나치고 나면
어느 날 아무 일도 없는 날에
몸이 먼저 멈춰 버린다.
돌이켜보면 나는 강했던 것이 아니라
멈추는 법을 몰랐던 사람이었다.
버티는 것은 잘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에는 서툴렀다.
그래서 결국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하루로.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무너짐은 실패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