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라는 단어의 폭력성

노력은 답이 아니었다

by 샤슐랭
열심히라는 단어의 폭력성.png



어릴 때 나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살면서 공부 좀 해라

이 한마디를 들어본 적 없이 살아왔던 나다.


한 번은 엄마한테 이렇게 되물은 적도 있다.


엄마는 나한테 왜 공부하라는 소리를 단 한 번도 안 해?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공부보다는 학교라도 잘 나가길 바랐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ㅎㅎ



고등학교 1학년, 시험 시간


고등학교 1학년 첫 모의고사 날이었다.
마지막 외국어영역 시간


교실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그날 처음 본 남자선생님

ROTC 출신의 스물일곱 살.

발령 첫 해였던 교사.

시험 감독으로 들어와
교실을 천천히 돌았다.


나는 영어 문제를 풀고 있었다.
확신이 있던 문항이었다.
1번에 체크를 했다.


그가 내 옆에서 멈췄다.


그리고 답안지를 내려다보더니
문장을 낮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건 5번이야.”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무슨 의미인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답안지의 5번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나는 이미 1번에 표시해 두었다.


그 문제는 나름 확신이 있었다.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옆으로 힐끗 쳐다봤다.

왜 나에게 와서 저러지.

솔직히 속으로는 " 네가 뭔데? 이렇게 말했었다"


영어를 아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중학교 때부터 나름 열심히 했고
내 판단에 대한 기준은 있었다.


그런데 그날,
시험 시간 한가운데서
누군가 내 답을 흔들었다.


나는 잠시 멈췄다.

그 순간
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내 판단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그를 믿을 것인가.


왜 하필 나였을까.

그 질문은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남은 고등학교 생활 동안 다시 만나게 된다.”


필자는 하고 싶을 때는 공부했고,
하기 싫으면 미뤘다.

그 정도의 아이였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는 달라졌다.

이상하게
1등을 놓치기 싫어졌다.

성과, 인정, 자리, 역할.


눈에 보이는 순위가 생기자
나는 갑자기 경쟁자가 되었다.


어릴 때는 몰랐던 감정이 생겼다.

지면 안 된다는 마음.
뒤처지면 사라질 것 같은 불안.


그때 다시 등장한 단어가 있다.

“조금만 더 열심히.”

이번에는 다르게 들렸다.
위로가 아니라 압박이었다.


이미 밤늦게까지 하고 있었고
이미 누구보다 책임지고 있었는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떠민 것도 아닌데
1등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자기 암시가 ‘지금은 부족하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성과가 안 나오면
전략을 바꾸기보다
나를 더 밀어붙였다.


쉬지 않고,
묻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그냥 더.

열심히는
생각을 멈추게 하는 말이었다.


왜 안 되는지 묻지 않게 만들고,
구조를 보지 못하게 만들고,
환경을 점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항상 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았다.

성과는 태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환경, 배치, 타이밍, 구조.
보이지 않는 조건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조금만 더 열심히.”

그 말은
이미 애쓰고 있는 사람을
조용히 고립시킨다.


어릴 때 나는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잘해야 한다는 말보다
이겨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를 증명으로 사용했다.


1등이면 괜찮은 사람,
밀리면 부족한 사람.


그 기준은
생각보다 오래 나를 지치게 했다.

내 몸을 상하게 했으며,

완전 박살 나게 했다.


이제는 안다.

열심히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노력보다 중요한 건
"방법"이다.


그리고 1등보다 중요한 건
"내가 왜 그 자리에 서고 싶은지 묻는 일"이다.


열심히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걸 모른 채
나를 밀어붙였던 시간들이
이제야 조금 이해된다.


나는 게으르지 않았다.
다만 방향을 묻지 않았을 뿐이다.


#공감에세이 #열심히 #폭력성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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