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는 시간과 노동이 눌어붙은 맛
나는 이제 엄마의 나이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나를 키우던 나이쯤을 지나
이제는 엄마를 돌보는 딸이 되었다.
나는 아직 실제 ‘엄마’는 아니다.
하지만 올해 일흔여덟이 된 엄마의 아침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매일 아침 밥을 짓고,
밥상을 차리고,
엄마가 숟가락을 들 때까지의 시간을 지키는 사람.
요즘 일상의 내 아침은 늘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눈을 뜨자마자
쌀을 씻고, 밥을 앉히고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낸다.
이 단순한 동작들이 어느새
나의 하루를 여는 의식이 되었다.
오늘은 조금 달랐다.
늦잠을 자버렸다.
눈을 뜨자마자 시계를 보고
‘아차’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오늘 메뉴는 뭘 해드려야 하지?
시간이 없다.
빠르게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누룽지가 떠올랐다.
사골 육수에 누룽지를 넣으면
빠르고, 속 편하고, 따뜻하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를 보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시골에 사시던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가마솥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던 누룽지.
키도 작고 그야말로 깡마른 체구.
기억 속에서 할머니는 늘 150을 조금 넘길까 말까였다.
외할머니는 농사일 때문에
피부는 햇볕에 바싹 그을려 있었고
살은 정말, 하나도 없었다.
팔목은 가늘었고
얼굴과 손등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그 손으로
할머니는 가마솥 바닥을 긁어
누룽지를 만들어주셨다.
가마솥에서 바로 만들어진
그때 먹던 누룽지 맛이 생각났다.
그땐 몰랐다.
그 누룽지가
시간과 노동이 눌어붙은 맛이라는 걸.
지금의 나는
가마솥도 없고
불을 지필 줄도 모르지만
엄마를 위해 매일 아침 밥을 짓는다.
어릴 적엔
차려진 밥상을 당연하게 받아먹던 내가
이제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는 여전히 내가 차려놓은 밥을 아무말씀없이
투정없이 오늘도 그냥 드신다.
“맛있다.”
“잘 먹겠다.”
한 번도
“입에 안 맞는다”
“안 먹겠다”
라는 말도 전혀 하시지 않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드셔주는 한 끼에
나는 매번 마음이 묘해진다.
오늘 끓인 누룽지 사골국을
엄마가 천천히 드신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할머니의 누룽지를 떠올리고,
엄마의 젊은 날을 떠올리고,
그리고 지금의 나를 본다.
누룽지는
빠르게 만든 음식이었지만
그 안에는
세 세대의 시간이 겹쳐 있었다..
어릴 적의 나,
딸이었던 엄마,
그리고
엄마를 돌보는 지금의 나.
아마 이것이
요즘 내가 느끼는
인생의 맛일 것이다.
2026.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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