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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 쏘다 Mar 25. 2020

수술실 앞에서

어머니의 얼굴

 오후에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술실로 급히 들어오라는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고 마스크에 모자까지 챙겨 쓴 참이었는데, 수술방 문을 열려고 보니 당직실에 던지듯 벗어놓은 가운 안에 사원증을 놓고 왔다고 했다. 나는 당직실에서 농을 피우며 쏟아지는 잠을 몰아내고 있었으므로, 그의 부탁이 오히려 반가웠다. 급히 수술방으로 갔다. 그는 말한 대로 완전무장을 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크와 모자 사이로 빼민 눈에서 조급함과 감사함이 묻어났다. 우리는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선생님"


 기껏해야 내 명치쯤 닿을 만한 할머니가 서 계셨다. 나는 아직 '선생님'이라는 말이 어색하기만 하다.


 "우리 아들이 수술받으러 들어간 지 한참 지났슈. 자꾸 전광판에서 이름이 내려가는데 무슨 문제 있는 건 아니지요?"


 나는 전광판을 보았다. 굳게 닫힌 수술실 문 옆으로 환자 이름이 가득했다. 순서에 별 의미는 없어 보였다. 외과, 정형외과, 비뇨의학과에서 각각 김OO 씨나 이OO 씨를 수술하고 있었다. 모니터를 지켜보는 와중에도 한 사람의 이름이 중간 즈음에 추가되었다. 방금 그 친구가 몰고 들어간 환자겠다 싶었다.


 간단한 목록이었다. 가나다순이라거나 수술방 번호순이겠지 싶었다. 자식을 들여보낸 어머니의 눈에는 모든 글자가 아들의 건강과 관계되어 보였을까. 가장 위험한 환자라서 맨 위에 이름이 걸린 것은 아닌지. 수술 중에 문제가 생겨서 아래로 이름이 처지는 것은 아닌지. 왜 다른 환자의 이름이 우리 아들을 앞질러 올라가는지. 할머니를 안심시켜드리고 싶었지만, 내 설명을 듣고도 할머니 얼굴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창을 통해 봄의 온기를 머금은 햇살이 눈부신 궤적을 남기며 쏟아지고 있었다. 봄의 정취를 느끼려면 무릇 병원 복도나 수술실보다는 산이나 강으로 여행을 가는 편이 나으리라. 하지만 삶에 의미를 더해줄 경험을 마주하려면 어디가 좋을까? 나는 여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삶을 사랑하는 방법. 반복되는 시간의 고리를 상승 나선으로 만드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고 믿기로 하자. 앞으로 당신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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