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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곡자매 Dec 01. 2017

#6. 셀프 인테리어

우리 집에 싱크홀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 글은 개를, 특히 어린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 분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셀프 인테리어의 시작

2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지만 벽지나 바닥 등의 기본적인 보수를 깨끗이 하고 들어온 신혼집이었다.


 보리를 데려왔을 때 이갈이 시기라 집안의 이것저것에 이를 갈기 시작했다. 하얀 붙박이장을 갉는 것을 시작으로 거실 벽지를 시원하게 뜯었고, 테이블과 의자 다리도 하얗게 속살을 드러냈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나뭇잎을, 종이가 보이면 종이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가끔은 어쩜 저렇게 잘게도 뜯어놓았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ㅎ ㅏ.. 하얗게 불태워따..
헤헤 엄마! 그림 너무 못그렷길래 내가 다 찌져써!



시너지 효과

그리고 콩이가 오면서 둘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역시 하나보단 둘이었다.

한 놈이 뭔갈 뜯기 시작하면 옆에 있던 다른 한놈이 함께 뜯었고, 한 놈이 잘근잘근 씹어 약하게 만들어놓으면, 나머지 한놈이 힘차게 당겨 완벽하게 숨통을 끊어놓았다.

신발장 마감재를 길게 뜯어내 신발장은 뼈대를 드러냈고, 거실 장판과 벽지에 구멍을 내서 회색 시멘트가 그대로 보일 지경이었다.

이러케 방석에 누워서 뜯으면 포근해오
다 뜯어서 피곤해오. 자깨오
뒤에는 내 작품이애오. 피곤해오. 자깨오.


싱크홀 1차 발생 (feat.생수통)
싱크홀 2차 발생



매일매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집에 들어오면 항상 새로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현관문에 달려있던 조화가 떨어진 날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분해되어 있었고,  백화점 전단지, 실내화, 쓰레기통에 있던 갖가지 것들이 거실 바닥과 신발장에 흩뿌려져 있었다.

헤헤 엄마 우리 얼마나 신나개 놀았개오?



열심히 발톱으로 소파를 파대서 구멍이 뻥 뚫렸고, 그 사이로 매번 스펀지를 끄집어내는 바람에 매일 퇴근 후에는 거실에 눈이 내려 있었다. 까만 슬리퍼를 뜯은 날은 까만 눈이, 소파 스펀지를 꺼낸 날은 노란 눈이..



그래도 괜찮다면

사실 남편은 보리와 콩이의 이런 저지레에 스트레스를 받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기껏 주말에 보수를 해놓으면 월요일에는 더 큰 면적으로 뜯어져 있었고, 퇴근 후 집에 오면 쉬지도 못하고 청소를 해야 했다. 신혼 초 나름 깔끔했던 우리 집은 뜯어진 벽지와 바닥을 가리기 위한 생수통 더미들을 거실 여기저기 두고 살아야 했다.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집은 지저분해 보였고, 집에서 찍은 모든 사진에는 생수통 더미가 빠지지 않았다.


반면에 지독한 개 사랑꾼인 나는 이런 것이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두 놈들이 신나게 흔들어대고 찢고 놀았을 광경을 상상하면 귀엽고, 잘못한 것도 모르고 청소하는 나한테 뽀뽀를 해대는 모습도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계속해서 집을 망가뜨리면 안 되기에 노즈워킹용 장난감을 많이 만들어주고 출근했다.

빈 우유갑, 휴지심, 양말, 구긴 종이 등에 간식을 넣어 던져놓고 나갔고, 녀석들은 간식을 빼먹고 이 장난감들을 뜯으며 놀았다. 

퇴근 후에 집이 더러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벽지나 가구 등을 망가뜨리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히 남편보다 내가 주로 집에 일찍 도착해서 남편이 오기 전에 깨끗이 청소를 해놓곤 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이런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개를 키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2살이 넘은 보리 콩이는 가끔 신발을 물고 놀긴 하지만 집을 망가뜨리는 저지레는 거의 없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를 키워보고 싶어 하고, 특히나 어린 강아지를 선호한다. 키우기 전에 이쁜 모습보다는 이런 힘든 점도 있다는 것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 특히 어린 강아지들은 이갈이 시기가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심할 수 있다는 것도.

사람 아기가 어릴 때 장난감을 온 집안에 퍼뜨려 놓고 놀고, 밥을 먹으며 바닥에 질질 흘리는 것처럼 강아지 아기들도 나름의 성장 과정이 있다. 만약 인테리어와 청결에 큰 애착이 있고, 이를 망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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