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첫아기
어릴 때부터 늘 개와 함께 자랐고 친정에도 삐삐가 있었지만, 결혼으로 독립 후에 데려온 보리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친정에서 키운 개들이 어린 강아지일 땐 나도 성인이 아니었고, 주 보호자는 엄마 아빠였기 때문에 친구 혹은 동생의 느낌이었다면 보리는 정말 자식 같았다.
내가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감이 사뭇 달랐고,
하루하루 성장하고 변해가는 모습이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다.
눈만 마주치고 꼬리만 흔들어도 맘이 절로 녹고 피로가 풀렸다.
우리가 출근하면 보리가 집에서 혼자 하루종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안쓰러웠다. 회사에 출근해서도 볼 수 있도록 안 쓰는 휴대폰에 cctv 어플을 설치했는데, 내 걱정이 무색하게 보리는 신나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오후 내내 팔자 좋게 늘어져 자고 있었다.
오히려 분리불안은 나에게 있었다. 출근을 하거나 외출할 일이 있으면 집에서 우릴 기다릴 보리가 아른거려 하루에도 몇 번씩 cctv를 확인하고, 한동안은 새벽같이 출근해서 일찍 퇴근을 하는 것도 모자라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집까지 내달렸다.
현관문을 열면 보리는 귀를 물개처럼 접고 허리와 궁둥이를 흔들어대며 끼잉끼잉 돌고래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울어대는 보리를 쓰다듬으면 물개 귀를 한 채로 발라당 뒤집어져서 끼잉 끼잉 소리를 내고, 내 무릎에 온몸을 어찌할 줄 모르는 듯 비벼대며 뒹굴었다. 보들보들한 보리와 뒹굴고 놀아주다보면 하루의 피로가 모두 녹았다.
엄마들 사이에 '손 안 탄 첫째는 없다'는 말이 있다. 첫째는 뭘 해도 사랑스럽고 조금만 칭얼거려도 안쓰러워 안아주게 된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물론 첫째는 첫째대로, 막내는 막내대로의 사랑스러움이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엄마와 첫 아기로 처음 만나 느끼는 감정들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