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우리끼리 하기로 해요.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개들과 산책하기 좋은 장소가 많다.
20년이 넘은 아파트이지만 단지 내 산책로가 잘 정리되어 있고, 연식이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여느 명소 못지않은 풍경을 연출한다.
주로 아파트 단지만 산책하고 돌아오지만, 날씨가 좋은 주말에는 종종 남편과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강아지 놀이터에 방문하기도 한다. 보통 강아지 놀이터라 하면 다른 개들과 킁킁 냄새를 맡으며 인사도 하고, 신나게 뛰어다니며 잡기 놀이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겠지만 우리 집 개들에게는 그런 모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보리의 경우, 인사법이 너무 과격하다.
#동네깡패
보리는 평소 산책할 때에도 다른 개들을 발견하면 맹렬하게 짖어댄다. 덩치나 생긴 것과 달리 목소리가 우렁차고 굵어서 짖는 소리만 들으면 대형견 못지않다.
그리고 강아지 놀이터에서는 사냥감을 발견한 것처럼 우다다다 무섭게 달려가 주둥이로 쿡 찌르거나 앞발로 누르고 선다.
사람으로 치면
갑자기 나타나서 뒤통수를 딱- 때리며 "야! 왔냐?" 이런 느낌이랄까?
물지는 않지만 상대 개가 깜짝 놀라서 깽!! 하는 경우도 있고, 보리와 비슷하게 한 성격 하는 개들을 만나면 싸우기 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그렇게 보리만의 일방적인 인사(?)를 마친 후에는 다른 개들처럼 킁킁 냄새를 맡기도 하고, 관심 없다는 듯이 지나가기도 한다.
상대 개의 덩치나 나이, 반응, 성격은 상관없다. 첫인사는 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성미가 풀리는 모양이라 아무리 자기보다 큰 개를 만나도 똑같이 군다.
사실 처음부터 보리가 이런 성격이었던 건 아닌데, 자라면서 성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해 지금은 성격 형성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제는 강아지 놀이터에 가도 줄을 잡고 함께 돌아다니고, 긴장한 상태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인사를 시켜주느라 녹초가 된다.
반면 콩이의 경우, 개 친구들이 너무 무섭다.
#뿌리깊은나무
여기저기를 너무 힘차게 누비며 다녀서 눈 뗄 틈이 없는 보리와는 달리, 콩이는 놀이터까지 데려온 보람이 없게 하는 개다.
엄마 아빠가 끈 잡고 다닐 때는 꼬리를 쉴틈 없이 흔들며 신나게 뛰어다니더니, 놀이터에는 들어오자마자 다리를 후들거려 잘 서있지도 못한다. 보리 언니 뒤에 숨어 다리를 벌벌 떨며 서 있거나,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꼼짝도 못 하고 앉아만 있다.
회사에 반려동물 동호회에 가입해서 종종 정모에 참석한다. 한 번은 애견 운동장 겸 카페에서 정모를 했는데, 운동장이 굉장히 큰 규모라 개들이 뛰어놀기 너무나 좋은 장소였다. 공놀이도 하고 여기저기 심어진 나무에 마킹도 하고 냄새도 맡으며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우리 동네 깡패 보리에게 잠깐 정신이 팔린 사이 콩이가 어디 있나 고개를 들어보니 드넓은 운동장 한가운데 혼자 앉아있는 개 한 마리가 보인다.
이쁘게 옷도 입혀서 데려왔는데, 모두가 신나게 뛰어노는 그 사이에 혼자 깊숙이 뿌리내리고 앉아있는 겁쟁이 내 강아지. 한참이 지나도 그 자리에 심어진 나무처럼 꼼짝 않고 앉아있어 모두가 콩이를 보며 웃었더랬다.
"집에 갈까?" 하면 누구보다 신이 나서 모터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다.
이렇게 몇 번의 강아지 놀이터 방문을 해보니, 보리에게도 콩이에게도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아 이젠 동네 산책만 다닌다. '새로운 장소에 가서 개 친구들을 만나면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은 오히려 내 욕심이나 만족이었던 것 같다.
매일 나가는 똑같은 산책에도 뛸 듯이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우리 보리 콩이,
오늘도 엄마랑 동네 산책 나가자!
잡곡자매 인스타그램 : @vorrrrry_k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