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곡자매 Mar 05. 2018

#15. 개털과의 전쟁

털 빠지는 개들과 함께 산다는 것


개를 키우는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집은 어떻게 저렇게 깨끗하지?!
저 개들은 털이 안 빠지나?


우리 집은 청소하고 반나절만 돼도 털이 풀풀 날아다니고 까만 옷은 엄두도 못 내는데, 다른 집은 어떻게 저렇게 (털이 많이 빠지기로 유명한, 혹은 털이 많이 빠지게 생긴) 개들과 뒹굴고 지내고 집이 깨끗한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가끔 보리콩이의 사진 아래에도 "보리 콩이는 털이 많이 안 빠지나 봐요" 혹은 "개털 관리 어떻게 하세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그분들 역시 우리 집을 깨끗하다고 단단히(?) 오해하고 있고, 개털에 대해 많은 고민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면 깨끗해보여요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어느 정도는 각자의 방법으로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안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더 좋은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인지(..ㅎㅎ) 내가 늘 궁금해하듯이, 누군가의 호기심을 조금은 해소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써보고 싶었다.






털이 많이 빠진다는 것

사실 15년간 함께 했던 삐삐는 털이 거의 빠지지 않았다. (※말티즈, 푸들, 시츄, 요크셔테리어 등의 견종은 털이 많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뒹굴고 침대에서 같이 자는 것도 가능했다. 털이 빨리 자라 지저분해진다는 것, 그래서 때가 되면 미용을 시켜줘야 한다는 것 외에는 '털'에 대해 전혀 신경 쓸 것이 없었다.


반면 보리와 콩이는 삐삐와 다르게 털이 많이 빠지는 편이다.

[털이 많이 빠진다]
이 한 문장에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이 내포되어 있는지 키우기 전에는 몰랐다
털이 많이 빠지는 두 녀석들


보리의 경우 여름이 되면 모량이 줄어들고 겨울에는 모량이 풍성해지는, 이를 위해선 계절마다 어마어마한 털.갈.이.시.즌.을 거치는 겉 털과 속털이 함께 있는 이중모견종 믹스견이고, 콩이는 털 길이가 자라지는 않지만 짧고 뻣뻣한 털을 유지 하면서 지. 속. 적.으로 털이 빠지는 단모종 믹스견이다.

(※ 이중모 견종: 포메라니안, 리트리버, 스피츠, 웰시 코기 등 / 단모종: 치와와, 불독, 닥스훈트 등)

사계절 내내 그대로인 콩 & 겨울이 되면 온 몸이 털뚱뚱이가 되는 보리 (feat.알라딘바지)



두 마리가 그냥 걸어 다니기만 해도 바닥에 털이 떨어지니, 둘이 뛰거나 뒷발로 긁기라도 하면 비치는 햇빛에 털이 우수수 휘날리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분명 아침에 청소기를 돌렸는데 저녁이면 청소를 안 한 것처럼 다시 더러워져 있고, 어두운 색 양말을 신고 걸어 다니면 발바닥 부분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특히 털갈이 시즌에는 쓰다듬기만 해도 털이 너무 많이 떨어져 이러다 몸에 남아있는 털이 있겠나 싶을 정도였고, 목욕을 시키면 바닥에 까만 털이 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털이 배수구를 막아 빠지지 못한 물이 차오르기 때문에 몇 번이나 배수구를 꽉 메운 털을 치워가며 목욕을 시켜야 했다.

어짜피 빠질 털인대 왜 씻어오?
수건으로 털을 닦아줬을 뿐인데..


솔직히 말하면 너무 많이 빠질 때에는 아예 며칠 청소를 포기하고 살기도 했다.

아무리 매일 치워도 소파 틈새, 옷과 양말, 수건, 그리고 가구 구석 퉁이 등 털이 곳곳에서 발견될 때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을 바엔 평일에는 집에 오랜 시간 있지도 않으니 그냥 더럽게 살고, 주말에 한 번 몰아서 치우자는 마음이었다.


'털 빠짐'의 차이는 단순히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사랑하지만 털 빠짐이 심한 우리 개들과 살기 위해서 나와 남편은 부단히도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유용한 청소도구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주변에 조언을 듣기도 하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2년 반 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래도 이제는 참을 만큼의(?) 지저분함을 유지하며 산다.




털과 함께 사는 법

1. 공간 분리하기

당연히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개털의 영향을 받는 공간을 줄이는 것이었다.

안방과 작은 방에 출입하지 못하게 안전문을 설치해두았다. 나중엔 우리가 드나들기 불편해서 작은방 안전문은 제거했는데, 다행히도(?) 보리는 함께 자는 것을 싫어하는 독립적인 개, 콩이는 침대에 올라올 생각조차 못하는 겁쟁이 개여서 안방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 단점: 모든 공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점이 조금은 아쉬움, 침대에서 함께 뒹굴고 잠드는 생활 불가능

- 장점: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방법

- 만족도 : ★★★★


2. 미용시키기

'미용을 하고 옷을 입혀두기' 가장 많은 분들이 선택하는 방법일 것이다.

보리의 경우 주기적으로 미용을 시켜주고 있고 확실히 보리 미용 후에 눈에 보이는 털이 많이 줄어들긴 했다. 콩이는 셀프 미용을 해봤으나 털을 자르자 온 몸이 물 빠진 색처럼 되어있었다. 까만 털이 있던 자리는 회색, 갈색 털이 있던 자리엔 빛바랜 베이지색의 털이 자리했다. 털색도 그렇고 안 그래도 마른 애가 더 말라보여 뭔가 모를 죄책감이 들어 그 후로는 절대 미용을 하지 않았다.(짠내가 폭발한다) 또 우리 개들은 옷 입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추운 날 산책할 때 외에는 옷을 입히지 않는다.

긴 털이 빠지던 것이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짧은 털로 결국 똑같이 빠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 털 빠짐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 만족도 : ★★


3. 옷 분리하기

거실에서 입는 옷과 잠옷을 분리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거실용 옷을 입고 개들과 소파와 러그에서 맘껏 뒹굴고 놀고, 자기 전에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안방에 들어가는 식이다.

- 단점: 안방에 들어갈 때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음/ 누가 왔을 때 털투성이인 내 모습이 조금 부끄러울 수 있음(ex. 택배 아저씨)

- 장점: 침대에 덜 드러눕게 되고, 대부분의 시간을 다 같이 오붓하게 거실에서 지내게 됨/거실용 옷에만 털이 붙기 때문에 털 제거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음

- 만족도 : ★★★

안타깝지만 아기를 키우면서는 안방에 있는 시간이 많고, 수시로 아기를 안아야 하니 이 방법은 사용할 수가 없다. 실내복 하나로 생활하는 대신 소파에는 거의 앉지 않는다. 혹시 앉게 될 경우 소파나 내 옷에 붙은 털을 돌돌이를 사용해 제거한다.


4. 털 끼는 공간 최소화하기

가장 털이 많이 끼었던 소파 틈새를 막기 위해 소파 패드를 상시 깔아놓고, 소파 매트만 털어 교체한다. 소파 매트는 소파 틈새를 모두 가릴 수 있는 폭도 넉넉하고, 좌우에도 낄 수 있는 긴 사이즈가 좋다.(3인 소파지만 4인 소파 매트 사용)

- 단점: 콩이처럼 소파 패드를 뜯어놓는 애들한테 좋은 장난감이 될 수 있음

- 장점: 청소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고, 급히 청소해야 할 때 소파 패드만 교체해도 깨끗해 보임

- 만족도 : ★★★★★

GOOD) 폭도 길이도 넉넉해 소파 틈새를 모두 가려줌
BAD) 길이가 짧아 고정이 되지 않고, 폭도 좁아 보여지는 틈새에 털이 끼임

나중에 소파를 다시 산다면 원목 데이베드를 사거나 최대한 틈새가 없는 제품으로 사려고 한다.


털이 잘 붙는 러그나 발매트 등은 없애고, 방수 가능한 주방 매트만 사용한다. 마약 방석 역시 방석과 몸체 사이에 털이 너무 많이 끼어 나중엔 아무리 털어도 제거되지 않고, 털을 뿜어내는 주범이 되었다. 마약 방석 대신 커버를 벗겨서 세탁할 수 있는 사각 방석으로 교체했다.


5. 아이템 적극 활용하기

우리 집의 청소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먼지털이개로 위쪽의 먼지를 턴다.

2) 무선 청소기로 소파 패드의 개털을 제거한다.

왼쪽: 청소기 밀고 난 후 / 오른쪽: 청소기 밀기 전

3) ★로봇 청소기를 돌린다

4) 극세사/정전기포 밀대 걸레로 걸레질한다

5) 빨래를 할 경우 개털 묻은 빨랫감만 모아서 세탁하고 건조기로 돌린다.

6) 마른빨래나 옷 등에 붙은 개털은 돌돌이로 떼어낸다


특히 3)에서 사용하는 중국 X사의 로봇청소기는 내가 산 가전제품 중에 가장 잘 샀다고 말하고 다니는 효자 제품이다. (물론 내가 내 돈 주고 산 제품이다) 집안일을 썩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기를 돌리는 것이 고역이었는데, 알아서 구석구석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청소를 해주니 이보다 편할 수 없다.

자잘한 장애물만 치워놓고 버튼을 누르면 되니 시간 절약도 되고, 외출했을 때에도 앱으로 구동이 가능하다. 개들과 산책 나가기 전, 아기를 재우러 방에 들어가기 전 켜놓기만 하면 내가 돌아왔을 때 깨끗한 거실을 선물해준다. 특히나 칭찬하고 싶은 점은 소파나 침대 아래 등 청소기를 돌리기 어려운 곳까지 다 청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4)에서 사용하는 청소용 밀대는 거의 대부분의 집에 구비되어 있을 것이다. 1회용 정전기포도 효과는 좋지만 아무래도 물걸레질까지 하는 것이 속이 시원해 보통 극세사 걸레를 이용한다. 분명히 청소기를 돌렸지만, 이때 또 털이 잔뜩 묻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5)에서 빨래 후에는 세탁기의 거름망(통돌이 세탁기의 경우 양쪽에 얼음 얼리는 제빙기처럼 생긴 것), 그리고 건조기의 먼지 거름망에 잔뜩 끼인 개털을 제거해준다. 의외로 이 거름망의 존재를 모르는 분도 많다.

6)에서 사용하는 돌돌이는 일본 C사의 초강력 돌돌이를 추천받아 사용하는데 정말 강력해서 잘 떼어진다.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왔다 갈 때 사용해 보시고는 "네가 이런 게 있어서 개들을 키울 수 있는 거구나" 하셨다.


그리고 물티슈를 사용할 일이 있을 때엔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평소 개털이 많이 쌓이는 장소를 한번 더 걸레질하고 버리는 것을 습관화한다. 예를 들면 베란다 창문 틈, 안전문 앞, 청소기가 들어가지 않는 좁은 구석, 책장 등이 있다.




거창하고 구구절절 길게 써놓았지만 사실 개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몸에 밴 습관처럼 당연한 이야기를 써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물론 저런 것 외에도 포기해야 할 것은 많다. 예를 들면 가장 갖고 싶은 1순위 가구인 패브릭 소파를 살 수 없고, 마음에 쏙 드는 러그를 발견하고도 "저건 우리 집에서 쓸 수 없어" 하면서 세차게 외면해야 한다는 것, 나와 남편이 좋아하는 까만 옷은 꼭 외출 직전에만 갈아입어야 하고, 개들과 외출할 때엔 털 묻은 티가 잘 나지 않는 회색이나 털이 잘 안 붙는 재질의 옷만 가능하다는 것 등..


까만옷을 입고나가면 이렇게 된다(동물병원에서 엄살부리는 보리)


정보 공유의 의미도 있었지만, #6. 셀프 인테리어 편에서 이야기했듯 [개 키우는 일 = 쉽지 않은 일] 임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개를 키우기 위해서는 원치 않은 부지런함과 어느 정도의 지저분함은 필연적으로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살아보니 '내가 조금만 노력하고 부지런히 살 마음가짐만 있으면 또 다 살아지더라'는  힘이 나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바닥에 짐을 두는 것을 최소화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요즘 유행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향해 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남편은 인정 못하겠지만ㅎㅎ)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털갈이 시즌이 끝나고 이제 정말 봄이 오는 것 같다!





* 혹시 제가 모르는 개털과 함께 사는  꿀팁이나  아이템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잡곡자매 이야기 구매처

https://smartstore.naver.com/vorrrrry_kong/products/4457181938



 잡곡자매 인스타그램 : @vorrrrry_kong




매거진의 이전글 #14. 엄마의 기쁨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