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잡곡자매 Feb 20. 2018

#14. 엄마의 기쁨조

산후우울증 따위 개나줘

임산부 엄마의 기쁨조

임신 초기 잠시 있었던 입덧 외에는 수월하게 임신기간을 보낸 편이지만,  신체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증상들은 피해갈 수 없었다. 특히 낮에는 길을 걷다가 쓰러져 잠든다는 기면증 환자마냥 졸음이 쏟아졌는데,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배가 뭉치거나 눌려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잠을 못 자고 회사생활을 하려니 집에서든 회사에서든 무기력하고 누워서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은 오지 않고, 새벽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고요한 적막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잠들어야 했다.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도 크게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을뿐더러 굳이 다음날 출근하는데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거실로 나오곤 했다.


거실로 나오면 개집 안에서 웅크려자던 콩이가 부스스한 얼굴로 꼬리를 빙~빙~돌리며 다가왔다.

엄마 벌써 깨써오? ㅎㅔㅎㅔ
나오꺼애오? 콩이 여기서 기다리깨오


자다 말고 마중 나오는 게 기특해 만져주면 쭉쭉 온몸을 스트레칭하며 모터꼬리를 돌리고, 소파에 털썩 앉은 내 옆에 긴 몸을 슬그머니 기대고 눈을 붙였다.


혼자 견디는 외롭고 고요한 시간에
따뜻하게 전해지는 콩이의 온기가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배는 또 고프다 못해 쓰리고, 혼자 주섬주섬 챙겨 먹는 것이 참 우습기도 하고 어둠속에서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는 내 모습이 서글프기도 했는데 이 순간만은 사람들이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말하는 내 옆의 작은 개 한 마리가 너무나 고맙고 커다랗게 느껴졌다.

나도 소파에 드러누워 눈을 감고 콩이의 머리와 등을 하염없이 쓰다듬으면 콩이는 내 귀에 금세 쌕쌕 숨소리를 내며 잠에 곯아떨어졌고, 덩달아 쓸쓸했던 내 마음도 조금씩 편안해지곤 했다.

엄마도 좀 자새오 콩이는 먼저 자ㄲㅐㅇ..Zzzzz




육아전쟁 참전용사 엄마의 기쁨조

부모님도 친구들도 내가 육아를 참 쉽게 하고 있는 것 같다고들 말한다.

몸이 힘든 부분은 말로 해서 뭐하겠는가, 몸 힘든 걸로 치면 나도 힘들다. 자고 싶을 때 못 자고, 먹고 싶을 때 못 먹고, 애가 울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안고 달래야 하니 등 어깨허리 안 아픈 곳이 없다.

아기가 180일이 된 지금까지 하루도 새벽에 깨지 않고 잘 수 있는 날이 없었다. 신생아 시절에는 2-3시간에 한 번씩, 6개월이 된 지금은 4-5시간으로 텀이 늘었지만 성장통으로 힘들어하는 시기인지 밤에 수시로 깨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울어대는 날도 많다.


새벽에 분유를 타러 거실에 나가면 콩이는 여전히 잠자다 말고 부스스한 얼굴로 마중을 나온다. 아기가 방에서 빽빽 울고 있으니 오래 만져주지 못해도, 분유 포트에 물이 끓는 짧은 시간 동안 쭈그려 앉아 열심히 쓰다듬어준다.

피곤해서 눈도 못뜨고 찡그린 얼굴로 나왔다가 콩이를 보며 웃는다. 콩이는 또 쭉쭉 스트레칭을 하며 모터 꼬리를 돌리다가 내가 분유를 타기 시작하면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 다시 웅크려 잔다. 잠도 많은 애가 이 잠깐의 쓰다듬을 받으려 왔다가 가는 모습을 보면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사랑해주나' 싶은 뭉클한 마음이 든다.

스트레칭 쭉쭉-


하루도 힘든 날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웃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덜 힘들다는 것이다.

집에 24시간 내내 함께 있어도 나만 보면 물개 귀를 하고 엉덩이춤을 춰대고, 내가 컴퓨터를 하거나 책을 볼 때면 엄마가 뭐하나 들여다보러 와주는 보리와 콩이가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웃게 된다. 안방에서 전쟁같은 육아를 치루고 파김치가 되어 거실에 나올때마다 참전용사를 맞아주듯 반겨준다. 한 놈은 만져달라고 내 옆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한 놈은 내 얼굴을 할짝할짝 핥아준다.  

엄마 나두 만저주새오 (아기발위에 턱걸치는게 특기)
나두 엄마랑 가티 잇을래




*물론 평일엔 회사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날아오고 쉬는 날이면 나에게 나가 놀라며 육아를 전담해주는 남편은 치열한 육아전쟁에서 없어서는 안될 든든한 아군이다. (지금도 혼자 카페가서 글을 쓰라며 날 내보내고 혼자 집에서 아기를 보고 있다)

몸은 고돼도 마음만은 행복하고 감사하고 풍요롭다.



남편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진심이다.

개들이 있어서 내가 히스테리 안부리는거니까 고마운 줄 알아!



100일동안 함께 고생한 콩&보리도 100일 기념컷



 잡곡자매 인스타그램 : @vorrrrry_kong


매거진의 이전글 #13.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