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입는 거 정말 싫어!
얼음공주
보리의 첫 미용 후, 옷을 사서 입혀주었다. 복실복실했던 애가 갑자기 민둥민둥 생닭처럼 변해버린 모습을 보니 뭔가 모를 죄책감이 들고 미안했는데 옷을 입혀놓으니 한결 보기 좋고 귀여움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보리는 옷을 입는 게 영 어색한지 옷만 입히면 동상처럼 그 자리에 우뚝 앉아 움직이질 않았다. '처음이라 그렇겠지 좀 지나면 괜찮겠지' 하고 기다려도 봤지만, 시위라도 하듯 정말 "그 자리"에서만 자세만 바꾸고 최소한의 활동만 하는 바람에 결국 벗겨줘야 했다.
콩이가 온 후 혹시 사이즈가 맞으려나 싶어 보리가 입지 않는 옷을 입혀봤다. 사이즈도 제 옷 마냥 딱 잘 맞거니와 노안이었던 콩이가 옷을 입으니 쪼꼬맹이 아가처럼 보이는 효과까지 있었다. 게다가 옷을 입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처럼 너무나 편안하게 활동하는 것이었다.
내친김에 자고 있는 콩이에게 인형 모자를 씌워보고, 인형이 입고 있던 산타 옷도 벗겨 입혀보았는데 빨간색이 너무나 잘 어울려 그 자리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콩이의 퍼스널 컬러는 빨간색인 것 같았다.
이건 마치 무채색 옷만 좋아하는 아들만 키우다가 알록달록한 다양한 옷을 딸한테 입혀보는 기분이랄까? 뭔가 모를 대리만족이 되는 느낌이었다.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보리에게도 도전해 보았지만, 보리는 몸에 뭐만 걸쳐졌다 하면 고장이 나버렸다.
과감한 오프숄더녀
그런데 콩이에게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콩이는 셀프 인테리어 편에서도 소개했지만 뭐에 하나 꽂히면 찢어지고 뚫어질 때까지 이빨로 씹고 뜯어대는 끈질긴 집념을 가진 아이였다. 옷도 예외는 없었다.
누워있다가 티셔츠가 눈에 띄거나 뒹굴 거리다 말고 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아채면 목 부분의 티셔츠를 이빨로 뚫릴 때까지 잘근잘근 씹은 후, 그 구멍에 이빨을 끼워 있는 힘껏 당기기 시작했다. 작은 구멍으로 시작된 티셔츠의 목 부분은 하도 넓게 뜯어져 한 때 유행했던 오프숄더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입히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콩이는 태생이 어디 더운 나라인지, 추위를 엄청나게 타는 애다. 평소에도 베란다의 해드는 곳에 자리 잡고 누워 혀가 길게 나올 때까지 잠을 자기도 하고, 한여름 폭염에 에어컨을 켜면 벌벌 떨며 베란다 문을 열어달라고 졸라 그 뜨거운 공기 속에서 곤히 잠드는 정도로 몸 지지고 뜨끈한 걸 즐기는 스타일이다.
여름에서 가을 넘어가는 정도의 추위만 돼도 어찌나 불쌍하게 웅크리고 주둥이를 파묻고 자는지 조금만 시원한 바람이 불면 어느새 내 손가락은 '강아지 옷'을 검색하고 있다.
이렇게 둘 다 옷을 입히기 적합한 성격의 개들은 아니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거의 매일 산책을 하기 때문에 쌀쌀한 가을~초봄 정도까지는 옷이 필요하다. 다행히 산책할 때만은 콩이도 옷을 찢지 않고, 보리도 얼음공주의 봉인이 해제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옷을 입은 두 녀석의 모습이.. 정말 너무 귀엽다.
인간은 어리석고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잡곡자매 인스타그램 : @vorrrrry_k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