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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이d Feb 10. 2022

당신의 바구니

아침마다 신들과 영웅들과 시간을 먹는다

부푼 당신의 얼굴을 보고는

빵이 발효된 것 같다고 말했어요

나의 어떤 말에 당신은

무릎을 치며 웃지요

소위 말해, 당신은 내 말에

필 받은거죠

느끼는 바에 충실한 당신은

그런 말이 생기면 바구니에 담아

모종을 심듯 우리의

일상 언어로 안착시켜요


우리가 무언가에 내남없이 기뻐할 때

우주라고 말하면 거창하긴 한데, 그리고

평생에 경이로움으로 제대로 본 적은 없는데

부푼 상상력으로 꿈꾸며 올려다 보던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의 우주를

내 심장 크기의 구슬에 담아

품에 안고

높고 가파른 길을

사뿐히 올라가는 기분이에요


작은 사전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치?

거기에 말의 씨와

말의 모종을 모아두자

비옥한 땅에 심고

거친 땅에 뿌리자 

그렇게 크지 않아도 돼

한 팔에 걸고

다닐 수 있는 바구니처럼


허공에 떠다니는 음성의 파편들

우리 존재의 중력을 담아

지이- 그읏- 히이-

새끼 손톱만한 경단으로 굴려

땅에 심으면 그것도


떠 다니나 심으나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그렇지만

땅 속의 어떤 것들은

자라기도 하니까


하늘을 그리워하는 작은 천사가 되기보단

흙냄새에 흥분하는 두더지 되어

서슴서슴 우리의

눈에만 보이지 않는

감각의 방울둘을 흩뜨려

뿌린다


 부산 여행에서 있었던 일화에서 시상의  단을 채집해 공굴리다보니 결국, 나로 돌아와 쓰게 된다. 말에 대한 집착이랄까, 민감이랄까. 어쩌면 고집일지도. 일찍이 서경석 작가가 “언어의 감옥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 안에서 쓰인 말이다. 그런 맥락을 어느정도 이해도 하고 정서적으로 내가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내가 ‘언어의 감옥 운운하면 그건 과장이고 오만이다. 나에겐 언어의 울타리 정도가 되겠다. 말에 대한, 주로 즐겁지만 어떨땐 지겨운  끌림과 오래 맺어온 관계가 제약으로 느껴지거나  바깥을  상상하기 힘들땐 지겨운 거다. 하지만 내가 그러한 것이지, 말의 한계가 아닌 것들이  많다. 말은  나아가서 내가 ‘말로는 표현할  없다 여기는 것을 어떤 이는 천연덕스레 우언과 상징, 은유로 적절하게 표현해낸다.  말이 어디까지   있을까? 나는 어디까지 말의 외연을 확장할  있을까? 그렇게 함으로 언어적 존재인 우리  사람들의 내면의 깊이를 파고들어갈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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