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이d Feb 23. 2022

우리 행복한 나열

아침마다 신들과 영웅들과 시간을 먹는다

출처: pixnio.com/ko/


열 두 개의 발가락 군도

사이에 두 개의 우두머리 섬들이 있어

그 기준에 양쪽으로 나누어진 섬들은 

편을 갈라 서로 싸우며 산다

열 두 개의 나열한 섬들


양질의 바람과 바다 생물들이 

도와

물질적인 고갈 없이 치러지는 

전투의 나날이 길고 오래다

그 와중에 죽는 전사자들

신으로 숭앙되어 격상되고 

존중되어 


죽고도 

살아남는다


죽고도 

갑옷을 못벗어


전쟁에 끝이 없어 어느덧

신들만이 포화상태

여기에도

인구정책이 필요해졌다


망자들의 신화(神化)가 토양에 스며들어

피운 핏기 없는

푸른 꽃 그것이

신들의 투표 용지였다 

죽고 한참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욕구에 따른다


지난한 시간 끝에 모인 대의

욕망

반항과 고립

갑옷은 남겨두어도 

이름만은 지워버리겠다는 각오로 


섬 하나 

달라 한다

그곳에서 자기들끼리 살겠다고 

한다


거북이 등짝지같이 생긴 그 섬은 

오랜 싸움의 편가름에서 이탈하고 

신들을 얻음과 동시에 오랜

거주민들의 생태를 잃었다


한줄기의 은빛 해로가 열리고

열나흘 이주와 탈주가 이어졌다


전쟁의 부산물인, 

우울한 신들의, 

푸른 꽃이,


보라색으로 썩어

향긋한 치명을 발한다


열둘의 나열한 섬들 위로

심-심-한(心深寒: 마음 깊이 추운) 바람이 분다


- 섬은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상상력의 심지에 불을 붙인다. 나는 지금껏 먼 것들, 떨어져 있는 것들을 내가 할 수 있는 붓질로 가능한 세세하게 그려내며 살고 싶어했다. 이것도 그런 시도 중 하나가 된다. 쓰고 읽고 마음에 다시 그려보고 하며 내가 지금 뭔가에 취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단편적인 지식과 개념 따위가 떠오르며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는 것이 어려웠다. 

 전쟁도, 신도 일종의 정신의 마비 현상. 연설이 되지 않으면서, 우울한 기도가 되지 않으면서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꿈결에 찾아든 작은 지저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