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나를 이루는 것들 | 단어 에세이

by 최소소
인생의 걸림돌이 불안이었던 때가 있다.

<'불안'의 사전적 의미>

1.몸과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2. 마음에 미안하다.
3. 부처의 얼굴


인생의 모토도 아니고 걸림돌이라니 웃프지만, 그도 그럴 것이 나의 모든 계획에는 늘 불안이 있었다. 불안은 끊임없이 나를 시험했고 끝내는 어떤 것도 실행조차 할 수 없도록 철저히 가로막았다. 내 꿈은 자의든 타의든 현실이 되지 못했다. 내가 꾸는 꿈들은 어른들에게 허황된 것으로 치부되었고, 나는 기대에 부응해 좀 더 현실적인 꿈을 찾아내야 했다. 어렵게 찾아낸 것조차도 내 안에서 끊임없이 검열당했다. 그 끝엔 안될 이유들만 남아, 꿈은 불안의 속삭임에 동요되어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렇게 나는 불안에 길들여지고 망상하는 삶에 안주하게 되었다.


불안함, 모호함, 불확실함은
대체로 위험부담이 따른다.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안전해지고 확실해지는 것. 그런 종류의 것들은 소망을 망상으로 만들고 떠올리는 그 자체로 또 다른 불안을 만들어냈다. 무언가 소망한다는 자체가 불안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버린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더 이상 꿈꾸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염치가 없어진다고 그랬던가. 그조차 소망이 되어버린 나는 차라리 염치라도 없었으면 하곤 했다. 그토록 견고했던 틀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 소망이, 내가 아닌 타인의 것으로 변모했을 때부터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야 할 무렵, 아이는 식품 알레르기가 있었다. 계란, 치즈, 우유, 새우 등 생각보다 많은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가볍게는 입술 주변이 붉어지고 통통해졌으며 심할 때는 귀가 퉁퉁 붓고 기침을 멈추지 못했다. 나는 가정보육을 선택했다. 또래아이들이 기관에서 노는 동안, 우리 아이의 하루는 내 손끝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하루 종일 아이가 문제없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와 간식을 골랐다.


'어린이집 안 갔니?'

'너무 그렇게 끼고돌면 애 바보된다. 아기엄마.'
기관에 다니지 않는 아이와 엄마에겐 늘 비슷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들이 말한 것처럼 나는 내 아이를 바보로 만들지 않기 위해 홈스쿨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지간한 유치원이나 놀이학교 못지않은 프로그램으로 아이를 가르쳤다. 그것만으로도 성에 차지 않아 왕복 50분을 운전해 부모가 참관할 수 있는 기관을 2년 가까이 다니기도 했다.

"저는 어린이집 안 다니고 몬테소리 다녀요!"

그 시절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자신도 또래처럼 어딘가에 다닌다고 자랑하려는 아이의 말이었겠지만, 나는 그게 아프고도 위로가 되었다. 마치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해요라고 대변해 주는 것처럼.


그렇게 먹고, 놀고, 배우는 일— 그 모든 사소한 순간이 나의 움직임에 달려 있었다. 내가 멈추면 아이의 하루도 멈췄다. 꼬박 4년, 불안을 떨치려 아이를 위해 움직인 시간들이 작은 성취들을 모았다. 불안은 더 이상 나를 붙드는 손이 아니었다. 나를 마비시키던 불안이, 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나를 일으켜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불안은 나를 흔들지만,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나를 흔들고 있다.

나를 부여잡고 흔들기만 하던 것이 등까지 떠밀며 흔든다. 비로소 불안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도 달라졌다. 불안은 기어코 내가 나를 위해 움직이게 만들었다. 목표한 것을 해내지 못할까 불안해하는 나를, 일단 시작부터 하게 만들었고 열정이 식어 사라져 버릴까 두려워하는 나를, 바삐 움직이도록 재촉했다. 처음부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나보다 작지만 큰 존재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불안을 이겨내고 불안을 발판 삼아보는 몇 해의 작은 경험들이 쌓였다. 그제야 나는 그것을 타인에서 나로 안심하고 옮겨올 수 있었다.


문득 불안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나를 이렇게 좌지우지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최근에 새로이 알게 된 '불안'의 뜻이 두 가지 더 있다. ‘마음에 미안하다’는 뜻과 불편한 마음의 상태뿐만 아니라 ‘부처의 얼굴’이라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불안(不安)과 불안(佛顔)이 공존하다니. 어쩐지 묘한 위로가 되었다. 하고자 하는 것과 해야 할 것들 앞에서 작아진 내가 어딘가에 있었다. 그런 스스로를 질책할 수밖에 없었던 내가 나에게 분명 미안 해했을 것이다. 불안은 결국 나를 두렵게 하고 가로막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미안해하며 성장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껏 느낀 불안은 마음에 미안한 불안이 아니었을까. 끼워 맞추는 느낌이 들더라도 정답을 찾아 나가기보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을 택한다. 나의 시행착오와 다른 의미의 불안이 만나 나는 불안과 화해한 듯 도리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불안은 나에게 두 가지의 얼굴로 다가온다. 하나는 나를 긴장하게 하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한다. 그저 불안이 나에게 말 걸어올 때 내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왜 마음이 미안한지 살펴볼 뿐이다. 자비로운 부처의 마음으로 불안을 기꺼이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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