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기류를 지나 순항하는 시간의 조각> 최영
벌써 11월 끝을 바라보고 있다. 밤새 지붕 위에 하얗게 쌓인 눈을 10분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잠이 아직 달아나지 않은 새벽에 보이는 이 풍경이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름다워 보였다. 나갈 채비를 하고 소복하게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김포공항행 버스를 탔다.
브리핑을 이미 마쳤는데 쇼업 시간이 늦춰져 있었다. 모두들 이럴 거면 잠이라도 더 자고 나왔을 거라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 제주도에서 출발도 못한 전편 비행기를 몇시간 동안 기다렸다. 눈발이 점점 줄어들고 늘어나길 반복하며 승무원들의 한숨만 커져갔다. 우리 비행기 뿐만 아니라 다른 항공사의 수많은 비행기들도 결항이 될지 지연출발을 할 수 있을지 열린 결말이었다. 나중에 뉴스에서 본 것이지만 게이트 앞에서는 승객들이 지상직원들에게 거센 항의를 하고 있었다. 결항된 비행기만 100대는 넘어서 위탁 수하물 찾는 곳은 캐리어가 쏟아져 나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자연재해 아래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공항에서 세 시간을 기다린 끝에 비행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눈알을 바쁘게 굴려가며 10분만에 인벤을 마치고 승객을 서둘러 태웠다. 하지만 *디아이싱을 해야 했기에 비행기가 바로 출발할 수는 없었다. 승객들은 그동안 왜 미리 해두지 않았냐며 거센 항의를 했다. 눈이 계속해서 내리면 디아이싱 작업을 미리 해두더라도 어차피 다시 눈이 비행기 위로 쌓인다. 그래서 디아이싱 작업은 안전운행을 위해 승객을 태우고 작업 공간으로 비행기를 옮겨서 이륙 직전에 해야 한다. 승객을 태운지 40분여만에 송산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김포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손님을 태우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비상구열 좌석에 앉았다. 우리반 훈련을 도맡은 담임 교관님이셨다. 교관님 앞에서 비상구열 브리핑을 하려니 괜히 긴장됐다. 퇴근 길에 교관님의 카톡을 보고 알게 되었지만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계셨다고 한다. 공항에서 오랜 시간 비행기를 기다리느라 피곤하셨는지 교관님은 비행내내 주무셨다. 갑자기 이렇게 뵙게 될 줄 몰라 준비해둔 것이 없었기에 급하게 기내에서 파는 젤리를 사서 쪽지와 함께 좌석 옆에 두고 갔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하는 고된 일정이었지만 보고싶었던 사람과 함께하는 비행은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항공기 겉면에 붙은 눈결정체를 부동액으로 녹이는 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