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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7 100CM 상공을 순항하는 비행기

<난기류를 지나 순항하는 시간의 조각> 최영

by 최영


212ef3976d550b389626691574a52be6.jpg 이미지 출처 pinterest




간절히 일어나길 바라는 기적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가장 원하는 것은 사무치게 그리운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5살 즈음부터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다름 아닌 아빠였다. 엄마의 엄한 교육 이념 아래 속박당하고 있다 느끼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아빠가 삑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는 나에게 있어 갖가지 학원 숙제와 문제집으로부터 합법적으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아빠는 언제나 그런 나를 보며 했던 말이 있다.



“우리 강아지! 아빠랑 데이트 갈까?”




아빠와 동네 나들이를 가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작은 문방구였다.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된 소박한 문방구였지만 나이가 손가락으로 세어지던 나에겐 거대한 세상이었다. 엄마의 허락이라는 탑승권을 발권 받아 횡단보도라는 비행기를 타야만 건너갈 수 있는 먼 나라의 신비로움을 담은 곳이었다. 이미 집에 20여가지의 필통이 있는 걸 알면서도 장난감 기능이 있는 필통이 매번 눈에 들어왔다. 그럴 때 마다 아빠는 하나 뿐인 늦둥이 딸에게 아낌없는 마음으로 지갑을 열어 주셨다. 필통이 들어있는 비닐봉투를 손에 걸고 남대천 인근 본가 아파트 개울가 공원으로 갔다. 아빠와 한 계단씩 내려가며 가위 바위 보를 하다 보니 시간은 상대성 이론을 따라 빠르게 흘러가곤 했다. 개울 돌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올라가면 그럭저럭 잘 구성된 산책로가 있었다. 그 중 항상 마음이 가던 곳은 맨 발로 진흙을 밟을 수 있는 길이었다. 장마철에는 가로등 주위에 모인 모기에 물려 허벅지와 팔꿈치를 벅벅 긁으며 진흙투성이가 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고작 7살 어린아이의 마음만큼은 18세기 당시 콜럼버스의 역사적 한계를 넘어 지구 온 세상을 다 제패한 항해사였다.




집에 돌아오면 아빠는 바닥에 누워 다리 위에 어린 나를 받쳐 비행기를 띄워주셨다. 나는 팔을 넓게 뻗어 행복, 해방, 평온이라는 국가들을 날아다닐 수 있었다. 누운 자리에 다리를 뻗은 하늘의 높이는 소박하게도 100CM이었다. 그 어린 아이는 커서 더 높아진 맑고 파아란 하늘을 날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 생생한 추억, 그것은 시린 겨울 바람이 볼을 스치는 듯한 생생한 촉각이다.




신께서 내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주신다면 아빠와 딱 한 번만더 남대천 계단에서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가위 바위 보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할 것이다. 집에 돌아오면 쭉 뻗은 아빠 다리 위에서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작은 비행기를 타고 아빠와 내가 만든 세상으로 날아갈 것이다.


더 이상 신체적 성장이 멈춘 나의 곁에 아빠가 세월을 빗겨 영원히 내 곁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기적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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