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재즈, 글쓰기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by 글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가 되기 전 재즈바를 운영했다. 달리기를 하는 성실한 작가다. 작가외에도 재즈와 달리기에서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음악관련 책도 출간한 적이 있다. ‘기사단장 죽이기’와 ‘1Q84’를 서점 계단에서 마음 졸이며 읽었던 젊은 시절이 까마득하다. 그는 건재하다. 마라톤 덕분인가?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작가가 미국 보스톤에 살면서 여러 곳을 여행했던 이야기, 살면서 느끼는 작은 행복, 사랑하는 고양이와의 추억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읽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하루키의 맑고 유쾌한 필체에 다정함을 느꼈다.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감성이 있는 작가가 어떻게 무시무시한, 때론 야한 이야기를 잘 써내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마라톤


42킬로미터를 실제로 달리고 있을 때는 ‘도대체 내가 왜 일부러 이런 지독한 꼴을 자처하는 거지? 이래봤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몸에 해로울 뿐이지’

곧 후회할 일을 하고야 마는 작가는 힘든 마라톤을 끝내자마자 다음에는 더 분발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고 나서야 자기가 아직 모르는 내면의 세계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풀코스는 커녕 10킬로미터도 뛰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불가사의한 세계의 일이다. 극도의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놓으면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오지만 그걸 극복하고 난 후에 느끼는 묵직한 쾌감과 안도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작가는 마라톤을 끝내고 결승점 근처의 식당에서 씨푸드와 함께 맥주를 마신다. 웨이트리스가 마라톤을 뛰었냐고 묻고 용기 있다고 말해주는 칭찬을 즐긴다. ‘이러한 일들이 가장 멋지다’ 라고 말한다. 이 정도를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말하다니 역시 취미도 거장답다.



*재즈


20대 후반, 여유가 생기면 항상 음반 가게에 들러 재즈 CD를 샀다. 덜그럭대는 드럼과 잘 들리지도 않는 배음인 베이스, 건반을 경쾌하게 오르락 내리락 하는 피아노 소리. 빈 듯 꽉 찬듯한 재즈를 듣고 있으면 말할 수 없는 자유를 느낀다. 좁은 차 안, 남편과 긴 여행을 떠날 때도, 집 안 공허한 분위기를 채울 때도 재즈는 필요하다. 좋아하는 곡을 플레이하면 빈 침묵은 완벽하게 메워진다.


무라카미도 재즈를 사랑한다.


‘8월 29일, 이 ‘스컬러스’에 오르간의 지미 맥그리프와 알토의 행크 크로퍼드의 쌍두 콰르텟 연주를 들으러 갔다. 정말로 신바람 나는 생생한 연주여서,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 라이브를 듣는다면, 이런 유의 베테랑 ‘비순문학계’ 흑인재즈가 가장 좋다는 내 학설이 여기서도 다시 증명되었다. 본래 리듬이나 음악적 콘셉트가 단순 명쾌하고 잔재주나 속임수가 없기 떄문에 이런 종류의 뮤지션들의 솜씨는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무뎌지는 법이 없는 것 같다.’


‘스컬러스’는 재즈클럽이다. 우연히 훌륭한 재즈뮤지션들의 연주를 듣고 즐거워하며 비교하는 모습이 전문가답다. 왜 중고 레코드가게에서 애틀랜틱계 뮤지션의 재평가가 낮은지 의아해하며 음악을 즐긴다. 마일스 데이비스나 키스 자렛 정도를 알고 있는 나는 이 책을 통해 무라카미가 인정하는 실력있는 재즈뮤지션들을 알게 되었다. ‘티치 미 투나잇’ 들어보고싶다.



*소설쓰기


무라카미 하루키는 성실하게 루틴을 지키며 작업하는 작가로 알려져있다. 자신이 어떤 루틴으로 작업하는지, 그 외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나열한다. 매일 아침 5시경 일어난다. 아침 먹고 글 쓰고 운동하고 점심을 먹는다. 오후에는 작업 이외의 일상적인 일을 한다. 아침형 인간이다. 새벽에 일어나 온 기운을 모아 10시반경까지 작업을 마친다. 이후는 다른 작가의 책을 읽거나 번역한다. 저녁 먹은 후에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출간되는 즉시 잘 팔리는 축에 속하는 작가이니 이렇게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 걸까? 그러나 어찌 보면 작가의 모든 것은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작품에 녹아드는 재료로 변할 수 있다. 카페를 가도 산책을 해도 사람을 만나도 모두 작품에 인물로 배경으로 행위로 변모하여 내용이 될 수 있다.

생활이 예술이 되는 직업, 좋은걸까? 피곤한걸까? 아무리 일과 쉼을 구분한다고 해도 작가의 뇌는 쉬지 않고 촉수를 세워 느끼고 생각하고 감상할 것이다. 그러니 작가가 쓰는 작업 외에 다른 활동들을 한다고 해도 이건 쉬는 것이 아니라 자료체험, 코텐츠발굴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정작 작가가 ‘난 정말 작품 생각 안 해. 그냥 쉬는 거야’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고양이


책 속에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무심한 듯 재미있는 그림이 실려있고 아내 ‘무라카미 요코’가 찍은 사진이 실려있다. 사진 중 제일 많은 것은 고양이 사진이다. 다양한 무늬의 고양이가 다양한 배경과 포즈로 담겨있다. 경제상태가 바닥일 때도 고양이와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 했다.


결혼하게 되었을 때 이불가게를 하는 장인이 ‘고양이는 데려오지 말게’라고 말했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마음을 고쳐먹고 고양이를 키우자고 해서 다시 데리고 온다. 동네 고양이, 이웃집 고양이, 길고양이등 다양한 고양이를 키우고 애정을 준다. 잘 알지 못하는 어딘가의 고양이에게도 사랑의 눈길을 쏘고 사진을 찍는다. 마지막은 그림을 그려준 안자이와의 초밥집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재치있고 유머있고 재미있다. 소소한 그들의 일상에 중요한 건 결국 초밥이다.


keyword
이전 15화강아지의 눈에서 행성의 깊이를 보다 【끝내주는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