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세 나오미 감독, 마키타 아쥬 주연
제73회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2023)
남편이 무정자증이라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토코는 아사토를 입양한다. 아이를 낳은 엄마는 중학교 2학년 14살 히카리다. 히카리는 학교 농구부 타쿠미와 사귄다. 둘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돌아온다.
히로시마에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임산부들이 지내는 기숙사가 있다. ‘베이비 배턴’ 아이들을 키워줄 부모를 매칭시켜준다. 사토코도 남편과 함께 이곳을 방문한다.
히카리는 평생을 함께 하자던 타쿠미를 뒤로하고 기숙사에 입소해 아이를 낳는다. 집으로 돌아와 학업을 이어나가지만 마음은 지옥이다. 어느 날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남자가 험한 일을 당한 것에 대해 알은 체를 한다. 히카리는 이성을 잃고 어른인 친척의 머리를 때린다.
그 후로 가출해 히카리는 신문배달을 하며 지낸다. 히로시마 ‘베이비 배턴’에 찾아가 무슨 일이든 하겠다며 머물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슬픈 답을 들었다. 원장이 병들어 더 운영을 할 수 없단다. 원장이 외출한 사이 자신의 아기를 데리고 간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알게 된다.
신문배달을 하며 가끔 아사토를 기르는 부모에게 전화를 건다. 아무 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는다. 아사토를 기르는 엄마 사토코는 불안하다. 어느 날 히카리는 아이를 돌려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아이를 주지 않을 거면 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만나게 된 세 사람. 순수하기만 했던 히카리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토코는 정말 생모가 맞냐며 묻는다. 외모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염색한 머리에 짙은 아이라인. 슬픔과 고단함에 퇴폐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앞에 있는 여자가 자신의 기억 속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협박해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아사토 아빠의 말을 듣고 히카리는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 당시 히카리는 아사토를 데려가는 부모에게 편지를 건넸다. 그 편지를 아이가 두 살이 되던 해부터 사토코는 아사코에게 읽어주었다. 히로시마 엄마라고 하며 편지를 읽어주었다. 그 밑에는 보이지 않는 음각으로만 된 글자가 있다. 그때는 신경 쓰지 않았다.
히카리가 돌아가고 사토코는 편지를 꺼내 다시 읽어본다. 외면했던 문장에 연필을 칠해본다. 선명히 나타나는 글씨. ‘나를 지우지 말아줘, 지우지 말아줘’라는 문장이다. 사토코는 오열한다. 밖에 나가 히카리를 찾아다니고 아사토에게 엄마를 소개해준다. 이 분이 바로 ‘히로시마 엄마’라고 알려준다.
히카리는 아이를 낳은 직후 집에 돌아와 다시 고등학교 입시에 전념하라는 엄마의 독촉에 시달린다.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이해를 받지 못한다. 어차피 자신의 마음에는 관심이 없고 사태 수습에만 급급한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실수라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기에 부모들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14살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남에게 넘기기까지 겪은 심리적, 육체적 고통과 불안은 또 어떠했을까?
시대가 지나도 이전의 슬픈 서사들은 현대에도 되풀이된다. 아이를 낳고 책임질 수 없는 어린 엄마,아빠들. 사회가 받아들이고 공동으로 양육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트루 마더스. 진짜 엄마는 누구일까? 낳은 사람이 엄마지만 낳기만 한다고 모두 엄마일리는 없다. 낳은 사람의 고통, 기르는 사람의 불안함. 둘을 지켜 보아야하는 아이의 혼란함. 벌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잘 해결해야할까? 사회가 함께 고민해봐야한다.
인간의 일이라는 것이 완벽하고 계획적이지만은 않다. 이성적이 아닐 때도 있다. 어린 중학생들이 앞일을 생각했더라면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책임을 질 수 없는 학생들에게 너희 잘못이니 너희가 끝까지 책임을 지라고 다그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차선의 방법을 찾아야한다.
기숙사를 운영하고 안전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것도 좋은 예이다. 그곳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고 다른 임산부들과의 교류를 통해 위안을 얻는다면 최악의 경우는 면할 수 있다. 생리 전인 14살 중학생의 임신이라니 상상만 해도 놀라운 일이다.
자식의 일이 부모의 일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부모의 처신은 이 이상 현명할 수 없다. 그러나 더 깊이 안아주고 포용해주었더라면 히카리는 거리를 떠돌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의 체면과 주위의 시선만 신경 쓰고 정작 딸의 아픔은 안아주지 못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고통이 제일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잘못했으니 그 정도 고통과 무시는 감수하라는 무언의 압력이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히카리는 결국 집을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든 생활을 이어나간다.
많이 보았던 스토리와 장면들이지만 감독은 다르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많이 보여준다. 바다. 바다를 많이 볼 수 있다. 히로시마의 바다와 이곳의 바다는 연결되어 있으니 너는 히로시마 엄마와도 하나야라는 암시를 한다. 당신이 낳고 우리가 키우는 아사토는 소중하고 귀여운 아기라는 사토코의 말. 그 말에 히카리는 무너지고 죄송하다며 그 집을 빠져나온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갈등을 만들고자 하면 끝이 없다. 또한 어떠한 상황이어도 갈등을 없앨 수 있다.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다. 문제삼지 않는 것이다. 히로시마 엄마가 아사토를 찾아오면 그대로 보여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주 비정상적인 상황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망가진 대로 그냥 둔다면 문제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현명한 어른들이 미성숙한 사람들을 품고 이끈다면 모두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베이비 배턴이 원하는 대로 아이들이 행복해질 것이다. 베이비 배턴에서는 철저한 원칙이 있다. 양육을 위해 부모 중 한 명은 직장이 있다면 그만두어야한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키우면 안 되냐는 질문에 원장은 단호히 말한다. 아이는 부모와 있어야 하고 행복해져야 한다고. 사랑의 결과로 낳은 아이가 불행해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